현대 사회에서 건강은 개인의 습관과 선택으로 유지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건강을 지키는 데는 개인의 노력 외에도 사회적, 제도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에게 전적으로 건강 관리를 맡기기보다는, 국가나 사회가 일정 수준까지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에서는 건강에 대한 책임이 어디까지 사회에 의해 보장되고, 어떤 부분까지 개인에게 요구될까요? 이 글에서는 북유럽,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사례를 바탕으로 건강 책임의 기준과 그 경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북유럽 복지국가: 건강은 모두의 권리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복지국가는 ‘건강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 권리’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의료 정책을 설계합니다. 이들 국가는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공공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병원 이용 시 대부분의 비용이 무상 혹은 매우 저렴하게 책정됩니다. 건강보험은 자동 가입이며,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누구나 경제적 부담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가정의 중심에 ‘1차 진료’ 시스템이 있으며, 예방 중심 의료가 강조됩니다. 이는 개인의 건강 관리를 국가 차원에서 유도하는 구조로, 국민이 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합니다. 즉, 개인의 생활습관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예방 시스템과 교육, 의료 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입니다. 또한, 북유럽은 직장 내 건강관리 프로그램도 국가 주도로 진행됩니다. 정기 건강검진, 심리상담, 식습관 개선 등의 프로그램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건강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직장에서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건강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하며, 사회적 연대 속에서 건강이 지켜져야 한다는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미국: 개인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구조
미국은 건강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개인에게 맡기는 구조를 가진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민간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운영하며, 의료 서비스는 보험 여부에 따라 접근성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도입된 ‘오바마케어’는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 확대 정책이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의료는 ‘내가 보험료를 내는 만큼 혜택을 받는다’는 원칙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양한 보험 상품이 존재하고,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의료보험을 선택해 가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는 문제를 낳습니다. 보험이 없거나 조건이 까다로운 경우, 감기 진료 한 번에도 수십만 원이 청구되며, 응급실 이용 시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아도 치료를 미루는 일이 발생하며, 이는 질병의 만성화와 사망률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건강이 ‘개인의 재정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으며, 사회적 책임보다는 자율성과 책임의 원칙이 강조됩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의료 민영화가 가져온 심각한 건강 불평등은 미국 내에서 중요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일본: 공공보험과 개인 책임의 균형 모델
일본은 건강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개인이 ‘공동으로 분담’하는 모델을 추구합니다. 모든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보험료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됩니다.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이 병원 이용 시 동일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일반 진료는 30% 본인 부담이며, 노인과 저소득층은 더 낮은 부담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한 교육, 예방 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는 건강 캠페인, 운동 프로그램, 식습관 개선 교육 등을 진행하며, 이를 통해 개인의 건강을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정부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역사회 보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방문 간호, 건강 상담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국가가 이 모든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지원합니다. 개인이 아프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국가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일본 건강 정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결론: 건강 책임, 혼자 짊어질 수는 없다
선진국들의 건강 정책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건강은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전제입니다. 북유럽은 사회가 건강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통해 모두가 공정하게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며, 일본은 국가와 개인이 함께 역할을 분담하는 균형된 모델을 제시합니다. 반면 미국처럼 개인 책임만을 강조하는 구조는 극심한 건강 불평등을 유발하고,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건강에 대한 책임은 개인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사회가 제공해야 진정한 건강권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그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역시 건강을 더 이상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