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는 오랜 시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낙원으로 불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환경 속에서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흔적과 야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DMZ에서 펼쳐지는 야생동물들의 실제 겨울나기와 그 이면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멧돼지 생존의 역설: 군부대 잔반통이 된 먹이터
민간인 통제 구역을 지나 비무장지대 남측 한계선에 위치한 최북방 군부대에서는 매일 남은 음식물을 한데 모아 버립니다. 부대와 떨어진 외진 곳에 마련된 잔반통, 그 주변은 철조망을 벗어나면 미확인 지뢰밭입니다.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이곳에서 군인들이 남긴 음식은 야생 멧돼지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고 있습니다.
음식을 버린 지 30분쯤 지나면 겨울 수풀과 같은 보호색을 한 멧돼지들이 나타납니다. 조심조심 경계를 하며 잔반통에 접근한 후 군인들이 버린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잔반통 근처에 나타난 멧돼지들은 시간까지 맞추어 나타나고 있으며, 하루 세 번 때를 맞추어 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앞에 놓인 먹이를 두고도 싸울 만큼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뢰를 밟은 듯 한쪽 다리 발목이 없는 수컷 멧돼지의 모습입니다. 풍성한 갈퀴를 가진 3, 4년 정도 된 이 수컷은 이미 사냥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무리에서도 쫓겨나 홀로 된 놈입니다. 오래 굶주린 듯 먹이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이 멧돼지에게 군부대의 잔반통은 포기할 수 없는 더없이 매력적인 서식 환경이 되었습니다. 야생에서만 살아온 멧돼지들이지만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별로 없어 보이며, 군인들이 지나다녀도 꿈쩍도 않고 먹이를 먹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의 낙원'이라는 이미지와 실제 동물들의 삶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만든 군사 시설과 지뢰가 가득한 공간이 역설적으로 동물들의 생존 공간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 공간은 동물들에게 끊임없는 위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버린 음식이 생존 수단이 되는 동시에, 인간이 만든 지뢰가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이 아이러니한 구조는 DMZ의 복잡한 생태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군부대 잔반의 생태학적 의미와 의존성
군부대에서 근무하는 한 군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식 쓰레기 버리고 나서 대청소가 끝나면 바로 이제 나와 가지고 보면은 멧돼지들이 한 열몇 마리 정도 와서 음식 쓰레기를 먹는데, 짬을 먹는데 그냥 보면은 그 뭐 인적이 없는 이제 야밤에 주로 훨씬 많이 나타났는데 신기하 보면 신기하고 뭐 이등병 때부터 봤는데도 병장 달고 봐도 신기하고." 이처럼 군부대 잔반통을 찾는 멧돼지들의 모습은 군인들에게도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야생 멧돼지는 원래 예민한 동물입니다. 늘 듣던 익숙한 소리에는 반응을 하지 않지만 낯선 소리가 감지될 때는 전혀 다릅니다. 갑작스러운 군용 차량 소리에 멧돼지들은 혼비백산 도망을 치며, 잘못 도망치면 지뢰를 밟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먹이 활동이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얼마 되지 않은 잔반을 먹으려는 멧돼지의 행렬은 계속 이어지며, 통 밖의 밥풀까지 깨끗이 먹어 치웁니다.
부대 측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희 수색 중대 입장에서는 나오는 잔반을 이렇게 야생동물들이 처리하니까 음식물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아 굉장히 좋고, 그리고 야생동물 입장에서는 겨울철에 먹이를 구하기 힘든데 또 이렇게 저희가 주는 음식물로 이렇게 배를 채우게 되니까." 이러한 상호 이익적 관계처럼 보이는 상황이지만, 여기에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군부대 잔반통에는 사냥 능력이 없는 어리거나 부상당한 멧돼지가 유난히 많이 찾아옵니다. 이는 곧 야생동물이 인간의 음식물에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겨울철 산속에 먹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일부이지만, 인간의 음식물이 이를 대체하게 되면서 동물들의 자생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먹을 것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지만, 인간이 남긴 잔반에 의지해 야생 멧돼지들이 하루하루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이미 인간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철새 월동지로서의 DMZ와 생존의 조건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얼어붙습니다. 계곡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라니 한 마리가 얼음을 핥아 먹고핥아먹고 있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고라니는 물을 많이 마시는데, 물을 찾아 계곡까지 내려왔지만 얼어 있어 물 대신 얼음을 핥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얼음으로 수분과 무기질을 섭취한 고라니는 산속 여기저기를 둘러보지만 마땅한 먹잇감을 찾지 못합니다. 고라니에게도 겨울이 힘겹기만 합니다.
강원도 철원 토교 저수지의 저녁이 찾아들면 수만 마리의 기러기 떼가 먹이 활동을 끝내고 아침 비상만큼 힘찬 날갯짓을 하며 토교 저수지로 돌아옵니다. 아직 산속으로 가지 않은 독수리 위로 기러기들이 날아들고 토교 저수지의 하루가 저뭅니다. 또다시 기러기들은 잔 위에 자리를 잡으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돌아온 기러기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내려앉았던 기러기들이 다시 날아오릅니다.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허공을 한 바퀴 돌면 수만 마리 기러기들의 잠자리가 마련되는 만큼 넓게 자리 배치를 합니다. 기러기들의 집단 군무는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다치거나 충분히 먹지 못한 새들은 동참하지 못하고 낙오합니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모습 이면에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비무장 지대는 겨울 철새들의 대표적인 월동지입니다. 짝을 짓고 새끼를 낳는 번식지만큼 월동지도 중요합니다. 번식의 성공 여부가 월동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월동지에서 먹이를 충분히 먹고 에너지를 비축해야 수천 km 장거리를 비행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봄이 되면 겨울 철새들은 다시 제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먹이를 얻지 못한 개체들은 낙오하고 도태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냉혹한 법칙입니다.
DMZ의 야생동물들을 관찰하면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되는 것은 '자연 그대로의 보존'이라는 개념의 복잡성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올해도 그리고 내년에도 오래도록 비무장 지대가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남기 위해서는 자연 그대로의 서식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 공간은 철책, 지뢰, 군사 시설,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 등 수많은 인위적 요소가 결합된 매우 특수한 생태계가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된 자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뿐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UnY9vIhuDiI?si=iOng7TOlaevO1bT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