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화는 단순한 경제 성장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철강, 반도체 산업을 일궈낸 과정은 치밀한 설계와 희생적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공 서사 뒤에는 간과된 사회적 비용과 구조적 한계도 존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산업 경쟁력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명암을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소 건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도전
신동식이 꿈꾼 50만 톤급 조선소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습니다. 세계 최대 조선소가 고작 10만 톤에서 15만 톤 수준이던 시절, 그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규모의 조선소를 대한민국에 세우겠다는 확신을 품었습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대한민국 조선을 세계 제일로 만들 수 있다면 왜 안 될까"라는 그의 신념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철저한 기술 학습과 현장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스웨덴 말뫼의 북유럽 최대 조선소 코컴스에서 그는 동양인 최초로 선박 건조 기술을 익혔습니다. 쫓겨날까 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는 것조차 잊은 채 조선소에 매달렸던 그의 모습을 사람들은 미친 사람처럼 봤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말뫼의 상징이자 스웨덴 조선 산업의 자랑이던 거대한 크레인이었고, 그는 언젠가 한국에도 저런 크레인을 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스웨덴 조선 산업이 쇠락하자 그 크레인은 애물단지가 되었고, 현대중공업은 해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 1달러에 크레인을 인수했습니다. 크레인이 떠나는 날 말뫼 시민들이 흘린 눈물 때문에 '말뫼의 눈물'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 크레인은 지금도 울산에서 배를 건조하고 있습니다. 정주영이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을 해주고, 수많은 기술자들이 희생적으로 참여하며 만들어진 이 교향곡은 오늘날 대한민국 조선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자 수출 효자 산업으로 자리 잡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공 서사에는 드러나지 않은 이면도 존재합니다. 조선소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희생, 지역 간 불균형 심화, 그리고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 고착화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조선 산업은 수백 가지 부품과 기계가 들어가는 종합 기계 조립 산업으로 국가 산업 전체를 끌어올리는 기관차 역할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소 협력업체들이 겪은 납품 단가 압박이나 기술 종속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포항제철 설립: 철강으로 세운 산업의 뼈대
조선 산업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의지와 열정만으로는 안 되었고, 전문가와 연구 인력이 절실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설립되었고,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과학자들이 모였습니다. 이 연구소는 곧 포항종합제철소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맡게 됩니다.
김재관 박사는 독일 유학 시절부터 종합 제철소의 필요성을 고민해 왔습니다. 그가 주장한 것은 60만 톤이 아닌 103만 톤 규모의 제철소였습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시장성과 기술, 경제성을 모두 고려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수많은 압박과 좌절이 있었지만, 그의 계획은 결국 관철되었고 포항제철은 이후 한국 산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김재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국에도 고유 모델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립만 하는 산업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결국 포니라는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가 탄생했습니다. 포니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 수출되며 한국이 완성차 생산국임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 정책이 항상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라도,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는지, 만약 실패했다면 이 방식은 어떻게 평가받았을지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정당화된 측면이 있지만, 성공한 역사만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방식이 언제나 옳았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포항제철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물가 폭등, 과잉 투자로 인한 부동산 문제, 그리고 중화학 공업 중심 성장이 초래한 경제 불안정성은 고추 파동과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지만, 이로 인해 실제 서민들이 겪었을 고통이나 사회적 갈등은 깊이 있게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산업: 늦은 출발에서 세계 정상으로
방위 산업, 기계 산업을 거쳐 산업 설계는 반도체로 이어졌습니다. 반도체는 늦은 출발이었지만, 국가적 결단과 연구 인력 양성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32K, 64K 메모리 개발 성공은 민간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냈고, 한국은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국으로 도약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성공은 조선, 철강,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된 기술 역량과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포항제철이 만든 고품질 철강재는 정밀 기계 제작을 가능하게 했고, 조선소에서 길러진 대규모 프로젝트 관리 능력은 반도체 공장 건설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별 산업의 성공이 아니라, 산업 간 연결고리가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였습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 중심의 고속 성장이 남긴 부작용 역시 명확했습니다. 물가 상승과 과잉 투자, 부동산 문제 등 경제 불안이 나타났고, 정부는 안정화와 개방화, 자율화로 정책 방향을 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이 이루어졌으며, 많은 기업들이 도태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러한 시행착오 속에서도 산업의 기본 설계는 유지되었지만, '국가 발전'이라는 큰 목표 아래 많은 개인의 삶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반도체 산업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술 경쟁이 심화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현재, 과거와 같은 방식의 국가 주도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빈부 격차 심화, 지역 불균형,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의 고착화는 산업화 과정에서 누적된 구조적 문제로,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돌아보면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에는 매 단계마다 설계자가 있었습니다. 바다에 길을 연 조선, 철강으로 뼈대를 세우고, 자동차와 전자, 반도체로 확장해 온 과정은 늦은 출발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남의 것을 베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결국 우리만의 길을 만든 역사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서사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과 개인의 희생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산업 발전이란 경제 지표의 상승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고 혜택을 나누는 포용적 발전을 의미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기보다는, 그 안에 내재된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균형 잡힌 발전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17e4mYr26fw?si=t_h-fR9kWVid9Fh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