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파미르 고원의 삶 (기후변화, 유목민, 생존방식)

by oboemoon 2026. 3. 6.

솔직히 저는 파미르라는 곳을 이 다큐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에 사람이 산다는 것, 그것도 21세기에 여전히 유목과 자급자족으로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상을 보는 내내 제가 느낀 건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이었습니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테레스켄을 캐지 않으면 겨울을 날 수 없고, 늑대와 눈표범이 가축을 습격하는 현실. 이곳 사람들에게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매일 맞서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동부와 서부, 전혀 다른 두 세계

파미르는 크게 동부의 고원지대와 서부의 계곡지대로 나뉩니다. 동부는 평균 고도 4,000m 이상의 황량한 고원으로 키르기스 유목민들이 주로 삽니다. 반면 서부의 반즈 계곡과 발탕 계곡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으로, 파미르어를 쓰는 파미르인들이 밀과 감자를 재배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이들의 외모였습니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이라기보다 유럽 백인에 가까운 얼굴을 가진 이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군 후손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고립된 환경이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지켜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서부의 농사는 자급자족이 목적입니다. 6월이면 밭갈이가 시작되고, 밀과 감자를 심습니다. 특히 감자는 남미 안데스가 원산지지만 지금은 고산지대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작물이 되었습니다. 토질이 나쁜 파미르에서는 곡물과 목초를 번갈아 심어야만 땅의 힘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놀란 건 이들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장경제와 완전히 분리된 삶의 방식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기후변화가 파미르를 바꾸고 있다

파미르에도 전에 없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기후 변화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까지 평균 기온이 2.2도에서 3.1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깨달은 건, 기후 위기가 단순히 '더워진다'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부에서는 빙하가 녹아 홍수가 나고, 동부 고원에서는 오히려 더 추워졌다고 합니다.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낮은 곳에서만 피던 꽃이 고지대에서 피어나고, 과일나무가 예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도 자랍니다. 새들의 이동 시기와 산란기도 달라졌습니다. 페드첸코 빙하는 지난 40년간 꾸준히 녹으며 아래로 흘러내렸고, 2010년에는 큰 홍수로 16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2050년 경이면 최대 45%의 빙하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여기서 딜레마를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테레스켄이라는 관목을 캐서 연료로 씁니다. 야크 똥만으로는 불을 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꼭 필요한 불쏘시개입니다. 하지만 테레스켄이 뽑히면서 토양 유실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한번 파괴되면 복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방석 크기로 자라는 데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연을 지키라"라고 무작정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생존과 보존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도 드물 것 같습니다.

유목민의 하루, 가축이 곧 전부인 삶

동부 고원의 키르기스 유목민들은 몽골 계통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키르기스어만 사용합니다. 제가 주목한 건 이들이 전통을 철저히 지키며 산다는 점이었습니다. 양털로 만드는 시르다크, 계절에 따라 목초지를 옮겨 다니는 생활 방식 모두 조상 대대로 이어온 것입니다. 구소련 시절 민족 이주 정책으로 이곳에 정착한 이후에도 삶의 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가축은 재산의 전부입니다. 특히 야크는 파미르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입니다. 기온이 15도만 넘어도 견디지 못하는 야크는 낮은 곳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긴 털이 촘촘히 나 있어 추위를 막아주고, 사료 없이도 거친 풀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제가 흥미로웠던 건 야크의 젖을 짜기 전에 먼저 새끼가 젖을 먹도록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새끼의 젖을 빼앗는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용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새끼가 먼저 젖을 빨면 젖 짜기가 쉬워진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목동들은 자기 가축이 없습니다. 약간의 돈을 받고 주인 대신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입니다. 고산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않아 많은 수의 가축을 기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젖을 가공해 만든 치즈나 버터가 거의 유일한 돈벌이 수단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파미르에서는 사치라는 점이었습니다. 물 한 모금도 얼음을 깨서 녹여야 하고, 겨울이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됩니다.

떠나는 사람들과 남는 사람들

눈표범과 늑대의 습격은 파미르 사람들에게 일상입니다. 한 마을에서는 보름 전 눈표범이 담을 넘어 80마리 가까운 양과 염소를 해쳤습니다. 다른 마을에서는 늙고 굶주린 눈표범이 가축을 노리다가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눈표범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과, 생계를 위협받는 주민들의 절박함이 충돌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늑대는 더 큰 위협입니다. 떼를 지어 다니며 닥치는 대로 가축을 습격하고, 무척 영리해서 위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정확히 구분합니다. 유목민들은 마르코폴로양의 뿔을 담장 위에 쌓아놓고, 엉성한 허수아비를 세워놓지만 효과는 미미합니다. 겨울이 되면 눈이 땅을 두껍게 덮어 가축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고 무더기로 죽어 나갑니다. 굶주린 가축들은 먼저 죽은 동료의 털까지 먹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최근 파미르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같은 민족이 사는 키르기스스탄으로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자신이 나고 자란 터전을 지키는 이들도 있습니다. 제가 이 다큐를 보면서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요?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것과, 조상 대대로 이어온 삶을 지키는 것 중에서요.

저는 이 다큐가 파미르를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척박하지만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현실을 담담히 보여줬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주민들의 목소리가 좀 더 깊이 담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입니다.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내면, 떠날지 남을지 고민하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더 있었다면 더 강한 울림을 남겼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변방'의 삶을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KX_tooM8Mwo?si=KkYF3U2O1dGTYmdD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