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77년 전통의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에서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는 피에타리 잉키넨과 KBS 교향악단의 9번째 음악 감독으로 한국을 택한 그의 행보는 클래식이 더 이상 국경과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 예술임을 보여줍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로 이어지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계보가 만들어낸 이 예술 형식은 왜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지휘자의 역할: 시간을 조율하는 예술가
음악은 건축과 달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 예술입니다. 대조와 반복을 통해 궁극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교향곡의 구조는 건축과 닮았지만, 공간 예술인 건축과 달리 음악은 오직 시간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음표, 같은 화음일지라도 지휘자가 속도를 높이고 낮추는 것에 따라 음악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말러 교향곡 같은 경우 연주자에 따라 10분 정도 차이가 나는 연주도 있을 만큼 지휘자의 해석은 결정적입니다.
지휘자의 역할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섭니다. 14살에 지휘자로 데뷔한 피에타리 잉키넨은 참신하고 도전적인 곡 해석으로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주목받고 있으며, 202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바그너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는 "음악가 역할보다 리더로, 사장처럼 방향을 잡아주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고쳐 나가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17세기 프랑스 작곡가 릴리가 긴 쇠막대로 바닥을 찍어 박자를 맞추던 시절부터 지휘는 진화해왔습니다. 작곡가들의 악보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악기 편성이 커지면서 곡에 대한 해석과 표현이 필요해졌고, 그래서 지휘자라는 직업이 탄생했습니다. 오른손은 박자를, 왼손은 음악을 표현하는 지휘봉은 팔의 연장선상에 있어 훨씬 더 많은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휘는 결국 몸 전체로 하는 것입니다. 팔과 다리, 그 사람이 가진 인상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휘자의 절대적 위치에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연주할 때 단 한 사람이 전체 연주를 망가뜨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무겁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가진 수직적 구조와 권위주의적 요소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지휘자 중심의 해석이 과연 모든 연주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려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남아 있습니다.
한국 영재교육: 체계적 시스템과 그 이면
한국은 불과 몇십 년 사이 클래식 음악계에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18살에 세계를 제패한 정명훈이 귀국했을 때, 그는 클래식 변방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기적처럼 나타난 인물이었습니다. 반세기 전 그의 국제 콩쿠르 입상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모스크바에서 동양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한국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졌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남다른 체계적 영재교육 시스템이 있습니다. 예술 분야에는 조기 교육과 영재교육이 아주 중요하며, 16살 전에 악기 다루는 법을 완벽하게 배워 자기 몸같이 생각되게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제대로 배우고 쌓아 올린 학생들의 실력은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다가 들어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많아지면서,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좋은 스승들과 공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연주자들의 강점은 완성된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력입니다. 해외 친구들은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을 부러워하며, "아시아인들이 테크닉은 정말 탁월하고 하지만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과거의 편견은 이제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 연주자들은 새로운 해석과 느낌을 제시하며 21세기 클래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고민도 존재합니다. 체계적 교육과 집중적 연습, 철저한 자기 관리는 분명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를 배출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경쟁과 부담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테크닉과 완성도에 집중하는 구조 속에서 각자의 개성과 실험정신이 충분히 자랄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교육 방식이 모든 음악가에게 최선의 길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특정 교육 환경과 자원이 있어야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진입 장벽의 현실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시간예술의 본질: 소멸되는 순간의 영원성
음악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함께 진행됩니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만 동시에 시간을 조율하는 예술, 그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시간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며, 재밌는 것은 모든 연주가 시간 예술이기 때문에 똑같이 두 번 반복 재생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 순간에만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자마자 소멸되는 것이 음악의 본질입니다.
지휘를 꿈꾸는 중학생 수연이는 "음악은 말과 같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기가 말을 배울 때 엄마 아빠 말을 듣고 배우는 것처럼, 자신이 좋다고 느껴지는 곡들을 계속 듣다 보면 관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연주자들을 이끌어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 된 상태로 음악적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리고 음악적으로 친근하게 청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휘자가 되는 데 정해진 길은 없지만 필요한 자질은 있습니다. 적어도 악기 하나는 잘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악보를 이해하는 눈도 필요합니다. 피에타리 잉키넨도 4살부터 배운 바이올린으로 시작했으며, 지휘를 만난 것은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 수연이는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오케스트라의 가장 많은 구성원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고 더 인지할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생명력은 그 뿌리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훌륭한 작곡가들이 계속 나오면서 클래식 음악만 계속 발전되어 왔습니다. 나라마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지만, 옛날과 지금이 똑같은 수준의 작곡가가 계속 나타나는 것은 클래식뿐입니다. 이는 클래식이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질문을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음악 전문 지식이 없어도 마음속에 있는 표현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음악의 힘입니다.
클래식 음악이 과거에 머문 예술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진지해지는 순간은 인류가 현존하는 이상 계속 지속될 것이며, 그때 계속 끝까지 같이 동반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클래식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피에타리 잉키넨이 한국에서 진행하는 지휘 마스터클래스는 이러한 전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음악은 여기 우리 안에 들어와 있으며, 음악과 함께 우리는 기쁨과 환희를, 고뇌와 성찰을 경험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폐쇄성과 한계를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체계적 교육 시스템은 세계적 연주자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의 경쟁과 부담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클래식을 '이해해야 하는 음악'이 아니라 '느껴도 되는 음악'으로 접근한다면, 이 예술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결국 클래식은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고 질문하는 한 계속 필요한, 시간 속에서 소멸하지만 동시에 영원한 예술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TCykwqS7drI?si=VJT1tR6ue_blUw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