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천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논쟁이 있었습니다.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인가, 아니면 그 너머에도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가. 이 근본적인 질문은 인류의 우주관을 완전히 뒤바꿀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에드윈 허블과 헨리에타 리빗, 두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인간의 탐구 정신과 맞닿아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허블의 발견: 우주의 크기를 재정의한 순간
에드윈 허블은 원래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가 보여준 망원경 속 별빛의 기억은 그를 평생 우주로 이끌었습니다. 1923년 윌슨 천문대 해발 1,700m 산 정상에서 허블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밤하늘을 관측했습니다. 겨울철 관측실은 난로를 피워도 손끝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지만, 그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허블이 발견한 것은 안드로메다 성운 속 변광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성(노바)으로 표시했던 별이 규칙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변광성임을 확인한 순간, 그는 유리 건판에 "VAR!"이라고 느낌표까지 찍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발견은 단순한 별 하나의 관측이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였기 때문입니다.
허블은 변광성의 주기를 분석해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를 약 50만 광년으로 계산했습니다. 당시 할로 섀플리가 추정한 우리 은하의 지름 30만 광년을 훨씬 넘는 거리였습니다. 이는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 밖에 존재하는 독립된 은하라는 증거였습니다. 허블은 이 발견을 담은 편지를 섀플리에게 보냈고, 섀플리는 "내 우주를 산산조각 낸 편지"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이 순간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는 믿음은 무너졌고, 인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인간적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은 이 서사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듭니다. 허블의 어린 시절 경험, 혹독한 관측 환경, 정장과 파이프를 고집한 독특한 스타일은 그를 단순한 과학자가 아닌 입체적 인물로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서술이 때로 "영웅 서사"로 기울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안드로메다 거리 측정은 여러 천문학자의 축적된 연구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헨리에타 리빗: 하늘의 자를 만든 여성 천문학자
허블의 발견 뒤에는 헨리에타 리빗이라는 이름이 숨어 있습니다. 하버드 천문대에서 일했던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망원경 사용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컴퓨터", 즉 살아있는 계산기라고 불렀습니다. 청각 장애를 안고 있던 리빗은 좁은 방에서 유리 건판을 들여다보며 별의 좌표를 손으로 하나하나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받은 급여는 시간당 30센트, 남성 천문학자 월급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리빗은 수천 장의 건판과 수십만 개의 별빛 속에서 규칙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였습니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1일에서 50일 사이의 주기로 규칙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별입니다. 리빗은 이 별들의 변광 주기와 실제 밝기 사이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변광 주기를 알면 별의 실제 밝기를 계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하늘의 자"라고 불렸습니다. 우주의 거리를 재는 기준점이 된 것입니다. 허블이 안드로메다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리빗이 만든 이 법칙 덕분이었습니다. 리빗의 주기-광도 관계는 현대 천문학에서도 여전히 우주 거리 측정의 핵심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리빗의 기여를 언급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녀의 법칙이 얼마나 결정적 기반이었는지 더 강조되었더라면 과학사의 균형 잡힌 시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과학적 성과는 단순히 데이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환경, 그리고 차별과 제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탐구 정신으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리빗의 이야기는 과학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과학자들의 기여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안드로메다 거리 측정: 우주 대논쟁의 결말
1885년 안드로메다에서 신성이 관측되었을 때, 천문학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습니다. 할로 섀플리는 "우리 은하가 충분히 크므로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 안에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히버 커티스는 "1885년 신성이 우리 은하 안에서 나타났다면 밤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을 것"이라며 안드로메다가 은하 밖에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우주 대논쟁입니다.
섀플리는 수천 개의 별을 표시해 우리 은하의 크기가 30만 광년, 별의 수가 10억 개 이상이라는 은하 지도를 완성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지만,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는 가정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커티스는 성운 관측의 대가로서 초신성과 별의 폭발을 찾아낸 경험을 바탕으로 안드로메다의 특성을 분석했습니다.
허블의 변광성 관측은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 50만 광년은 우리 은하 지름을 훌쩍 넘는 수치였습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우리 은하를 지름 30m 원으로 표현했을 때 안드로메다는 50m 떨어진 곳에 있는 셈입니다. 이는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은하임을 의미했습니다.
이 발견은 우주론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은하 밖에도 수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우주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메시지는 단순히 천문학적 지식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제한된 관점 속에서 세계를 이해해 왔는지, 그리고 과학이 어떻게 그 한계를 계속 확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결론
허블의 발견과 리빗의 법칙은 인류의 우주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학적 성과가 개인의 영웅적 노력만이 아니라 여러 연구자의 축적된 기여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차별과 제약 속에서도 진리를 향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통해, 우주 탐험이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닌 인간 정신의 확장임을 깨닫게 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JZobHwo72q8?si=H54QBqr6lzseAh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