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왕숙천은 인구 50만의 중소도시를 흐르는 한강의 지류입니다. 2003년 하수관 정비 이후 생명 하천으로 재탄생한 이곳에는 사계절 동안 치열한 야생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겨울 얼음판 위의 청둥오리부터 여름 백로 군집까지,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백로 번식지로 본 도시 생태계의 복원력
왕숙천변 남양주시 진접읍 뒷동산은 여름이면 백로들의 거대한 번식지로 변모합니다. 수백로, 중대백로, 쇠백로, 황로, 왜가리 등 약 400여 마리의 백로가 집단으로 둥지를 트는 이곳은 마치 층층이 구획된 아파트처럼 질서 정연합니다. 몸집이 큰 왜가리와 중대백로는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작은 쇠백로는 아래층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러한 수직적 구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종간 경쟁과 협력이 만들어낸 생태적 질서입니다.
백로들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왕숙천의 풍부한 어류 자원입니다. 번식기 새끼를 먹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차례 하천을 오가는 백로 부부의 모습은 부모의 헌신이 어떤 종에게나 보편적임을 보여줍니다. 수백로 수컷은 좋은 둥지와 멋진 장식 깃을 갖춘 개체일수록 짝짓기 성공률이 높아지며, 접시 모양의 둥지를 함께 짓는 과정에서 부부 관계가 형성됩니다. 23일간의 포란 끝에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의 위와 식도에 저장된 물고기를 토해낸 것을 먹으며 성장합니다. 작은 새끼를 위해 어미는 큰 물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토해내는 세심함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백로 둥지에서는 냉혹한 생존 법칙도 작동합니다. 제작진이 발견한 특이한 둥지에서는 쇠백로 어미가 해오라기 새끼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는 해오라기가 백로 둥지에 몰래 알을 낳은 탁란으로 추정되는 사례입니다. 친자식의 먹이를 빼앗아 먹고 자란 해오라기 새끼는 경쟁 상대인 백로 막내를 공격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막내 백로는 둥지에서 추락해 다시 올라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합니다. 알을 품어 부화시킨 어미에게 해오라기도 자식이지만, 둥지의 생존 법칙 앞에서 모성애는 무력합니다. 이처럼 백로 번식지는 도시 생태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치열한 공간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물총새 사냥 기술과 하천 먹이 피라미드의 역동성
왕숙천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냥꾼은 단연 물총새입니다. '물고기 호랑이'라 불리는 이 작은 새는 몸에 비해 크고 긴 부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물속 사냥에 최적화된 진화의 결과입니다. 물총새는 정지 비행 시 1초에 약 20회의 날갯짓으로 공중에 머물며 먹잇감을 탐색합니다. 목표물이 포착되면 내리꽂듯 직선으로 날아가 물고기를 낚아챕니다. 잡은 고기는 실신시킨 뒤 머리부터 먹는데, 이는 뼈가 목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물총새의 먹잇감이 되는 피라미는 왕숙천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물이 흐르는 하천의 중하류에 사는 피라미는 먹이 피라미드의 하부에서 하천 주변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5월이 되면 수컷 피라미는 혼인색으로 단장해 암컷을 유혹하고, 암컷이 산란 장소를 정해 알을 붙이면 수컷이 방정하는 번식 행동을 보입니다. 이 순간을 노리는 포식자들도 많습니다. 검은 해오라기는 '강의 저승사자'라 불릴 만큼 물고기들의 산란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물총새 역시 이 시기에 사냥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왕숙천의 먹이 피라미드는 단순한 포식-피식 관계를 넘어 계절적 리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봄 산란기를 맞은 잉어는 수온이 섭씨 18도가 되면 수심이 낮은 수초 지대로 올라와 약 30만 개의 알을 낳으며, 이 중 약 20%만이 정상적으로 부화합니다. 하천에서 태어난 이러한 생명들은 다시 백로, 물총새, 검은 해오라기 같은 상위 포식자를 왕숙천으로 불러들입니다. 황조롱이는 평소 쥐 나 작은 새를 먹지만 여름에는 풍부한 곤충을 별미로 즐기며, 도시의 가로등을 전망대 삼아 사냥합니다. 이처럼 왕숙천의 먹이망은 계절과 종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정교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도시 야생의 역설과 인간-자연 공존의 가능성
왕숙천의 가장 큰 의미는 도시라는 인공 환경 속에서도 야생이 번성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멸종위기종인 살쾡이가 서울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남양주 도심에 출몰하고, 고라니는 갈대밭과 낮은 관목 사이를 오가며 먹이를 찾습니다. 너구리는 밤마실을 나와 뾰족한 주둥이로 땅을 파 지렁이와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이들이 도시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왕숙천이라는 물과 식생이 풍부한 생태 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시 야생은 언제나 인간 활동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참게는 바다와 민물이 닿는 지점에서 태어나 6월이 되면 성장을 위해 왕숙천 계곡으로 올라갑니다. 일부는 거센 물살을 피해 수직에 가까운 보의 경사면을 타는 목숨 건 여정을 감행하지만, 고지에 도달한 참게를 기다리는 것은 낚시용 뜰채입니다. 조국을 향한 참게의 여정은 양동이 속에서 끝나고 맙니다. 검은등할미새는 왕숙천 다리 밑 철골에 둥지를 틀고 네 마리의 새끼를 키웠지만, 피서객들의 물놀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며 눈치껏 새끼를 먹여야 했습니다. 결국 네 마리 중 세 마리는 죽고 한 마리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왕숙천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백로 아파트가 생긴 지 10년 동안 동네 사람들의 집은 사라지고 새로 생기기도 했지만, 백로들의 집은 그대로입니다. 주민들에게 백로는 이제 여름을 함께 보내는 가족이며, 도시는 자연을 식구로 받아들였습니다. 덤불해오라기는 부들을 접시 모양으로 꺾어 집을 만들고, 부리를 위로 들어 올려 부들 줄기처럼 위장하는 의태 행동으로 먹구렁이를 따돌립니다. 흰물떼새는 천변 자갈밭에 둥지를 틀고 보호색으로 알을 감추며, 꼬마물떼새 부부는 날개를 다친 척하는 의상 행동으로 개를 유인해 새끼를 지킵니다. 이러한 야생의 전략들은 모두 인간이 조성한 도시 환경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왕숙천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도시는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며, 국도와 가로등, 아파트 사이에서도 생명은 치열하게 번식하고 경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생태계 바깥의 관찰자가 아니라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되살아난 하천은 야생을 부르고, 야생은 다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자연과 사람의 일상이 한 울타리 안에서 흘러가는 왕숙천은 도시의 생명 거점이자,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BhW_STaDRpE?si=QAhTg_zefDCYZO6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