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에티오피아 신앙 여행 (절벽 교회, 타봇 축제, 현실과 믿음)

by oboemoon 2026. 3. 10.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해발 2,500m 절벽 위에 교회를 짓고, 맨손으로 수직벽을 타고 올라가 기도를 드리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런 질문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단순히 마음속 믿음을 넘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깊게 다가왔습니다. 게랄타 지역의 깎아지른 절벽 위 교회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이 신에게 닿고자 했던 수천 년의 열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절벽 위 교회,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몸짓

에티오피아 북고원 게랄타의 교회들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종교 공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수직 높이 300m의 절벽을 맨몸으로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아브나 예마타 구 교회는, 처음 영상으로 봤을 때 "저기 정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로프도 없이 바위 틈새를 손으로 움켜쥐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선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신앙이 단순히 편안한 마음의 안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두려움보다 경외심이 더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교회는 그냥 기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신의 숨결이 직접 닿는 신성한 자리였습니다.

50년간 이 교회를 지켜온 사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절벽 위에서 홀로 타봇을 지키며 마을의 안녕을 기도했다는 그 세월이 얼마나 고독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고독이 아니라 소명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닿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이렇게 극단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경외감과 동시에 약간의 불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타봇 축제와 언약궤,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타봇은 단순한 종교 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십계명을 담았다고 전해지는 언약궤의 복제물인 타봇은, 모든 교회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도 볼 수 없지만, 1년에 단 하루 팀카트 축제 때만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왜 굳이 숨겨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축제 장면을 보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타봇이 등장하는 순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경외감에 휩싸이는 모습은 마치 신이 직접 현현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년 내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존재가 더 신성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적 신비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지만, 이 장면만큼은 그 집단적 믿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악숨의 시온 성모 마리아 교회에는 언약궤 진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오직 선택받은 한 명의 수도자만 볼 수 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저에게 "정말 그 안에 뭐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안에 정말 언약궤가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 자체인 것 같습니다. 믿음은 검증이 아니라 확신으로 유지되는 것이니까요.

가난과 전쟁 속에서도 이어지는 희망

다큐멘터리는 신앙의 아름다움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절벽 아래 펼쳐진 현실은 가난과 가뭄, 그리고 전쟁의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2020년부터 3년간 이어진 티그라이 내전은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크브롬이라는 소년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사제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부모는 양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아들의 학비와 씨앗, 비료를 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난 속에서도 아들의 꿈을 응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뭉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제가 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제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절벽을 오르는 것보다 더 험난한 배움의 길을 거쳐야 했고, 어두운 교회 학교에서 고된 수업을 견뎌야 했습니다. 크브롬의 형은 집을 떠나 도시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도왔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신앙이 희망을 주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제한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크브롬은 2년의 수업을 마치고 부사제가 되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모두에게 희망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큐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 이 사회에 교육과 경제적 기회가 더 많았다면, 크브롬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신앙이 희망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자체가, 어쩌면 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닐까?

이 다큐멘터리는 인간이 신에게 닿고자 하는 열망과, 그 믿음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을 지탱해 주는 힘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신앙이 주는 위로만큼이나, 그 신앙에 기대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벽 위 교회는 아름답지만, 절벽 아래의 삶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신앙과 현실, 둘 다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 https://youtu.be/HplVSSFJMmY?si=DyT0QwAfLWBjxLXh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