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할 뿐입니다. 인도의 타지마할보다 높은 쓰레기산,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동물들, 바다를 뒤덮은 점액질까지, 이 모든 현상은 우리의 소비 방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는 환경 문제를 넘어 명백한 인권 문제이기도 합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벌어지는 환경불평등의 실상
인도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는 매일 2,000톤의 쓰레기가 쌓이며 타지마할보다 높은 산으로 자라났습니다. 쓰레기차가 도착하면 사람들은 몰려들어 플라스틱과 금속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지만, 그 수입은 하루 몇 천 원에 불과합니다. 이곳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먹이터가 되었습니다.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를 먹고 살아가는 소들은 플라스틱을 삼켜 병들어 죽어갑니다. 인도에서는 해마다 수천 마리의 소가 쓰레기 때문에 목숨을 잃으며, 실제로 한 마리의 소 배에서 90kg이 넘는 쓰레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벌어집니다. 코끼리의 서식지 인근에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서며 코끼리들이 쓰레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쓰레기장으로 몰려들고, 플라스틱을 삼킨 채 쓰러져 죽습니다. 정부가 일부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지만, 분리수거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쓰레기는 보호구역 안으로 옮겨집니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장이 야생동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쓰레기산은 또 다른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썩는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로 인해 매년 대형 화재가 발생하고, 유독가스는 도시 전체를 뒤덮습니다. 정부는 쓰레기를 태우는 방식을 선택하지만, 이는 온실가스를 더 배출해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킵니다. 매립지 인근의 낙농 농가에서는 소들이 원인 모를 질병에 걸리고 우유 생산량도 급감하지만, 우유의 안전성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 문제가 단순히 생태계 파괴에 그치지 않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해양오염이 만들어낸 바다의 재앙
쓰레기 문제는 육지를 넘어 바다로 이어집니다. 미국 멕시코만에서는 강을 따라 흘러든 오염물질로 바닷물이 두 가지 색으로 갈라집니다. 플로리다 해변에는 모자반이 대량으로 밀려와 썩으며 악취를 풍깁니다. 질소와 인이 포함된 비료와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모자반이 폭증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양의 해조류는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번식은 산호의 광합성을 막아 산호를 죽입니다.
튀르키예 마르마라 해에서는 '바다 콧물'이라 불리는 해양 점액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플랑크톤이 과도하게 증식한 뒤 한꺼번에 죽으며 점액질을 형성했고, 바다는 숨 막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원인은 수십 년간 이어진 오염과 기후 변화였습니다. 제주 연안에서도 외래종 해조류가 폭증하며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광어 양식장에서 흘러나오는 배출수와 사료 찌꺼기가 있습니다.
바다의 데드존은 1960년대 45곳에서 현재 700곳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소비 증가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비료, 세제, 공장 폐수가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양오염은 단순히 물고기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해양 생태계의 붕괴는 식량 안보, 기후 조절 시스템의 교란으로 이어지며, 결국 인간의 생존 기반을 위협합니다. 화면 속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제품 포장지를 볼 때, 이 문제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전자폐기물에 숨겨진 잔혹한 불평등
환경 문제의 피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많이 소비하는 부유한 나라들이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로 떠넘깁니다. 전 세계에서 버려진 전자제품은 나이지리아 같은 국가로 향하고, 고장 난 제품들은 그대로 쓰레기가 됩니다. 이를 처리하는 것은 가장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보호 장비도 없이 전선을 태우며 중금속에 노출됩니다.
전자폐기물 처리 공장이 들어선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원인 모를 죽음이 이어집니다. 자신들이 쓰지도 않은 제품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현실은 명백한 불평등입니다. 환경 보호라는 말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된 현실이라는 점을 이 장면들은 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는 누구의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구조적 불평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보다 처리하는 데만 집중해 왔을까요? 환경 피해의 책임은 소비자 개인에게 있는 걸까요, 아니면 생산 구조와 정책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걸까요? 부유한 나라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가 감당하는 이 구조는 과연 정당한가요? 그리고 지금처럼 계속 소비한다면, 다음 희생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인권과 정의의 문제로 우리를 이끕니다.
쓰레기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동할 뿐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멀리 가서 사람과 동물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화면 속 사람과 동물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gLYoygbzZag?si=Fvr5MEgCOxhirbv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