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가 끝나고 저수지 물을 빼는 날, 시골 마을에는 특별한 축제가 시작됩니다. 60년 지기 친구들이 가래를 들고 모여 물고기를 잡는 이 풍경은 단순한 고기잡이를 넘어선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전통 방식이지만, 그 안에는 공동체의 추억과 관계, 그리고 삶의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오늘은 이 특별한 연례행사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가래치기 방식으로 이어지는 전통과 끈기의 미학
저수지 물 빼기 행사에서 사용하는 가래는 대나무나 조리대를 엮어 만든 전통 어구입니다. 현대적인 그물이나 전기 장비를 두고 굳이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효율이 아닌 다른 곳에 있습니다. 가래치기는 "힘껏 내리치고 수없이 도전할수록 물고기가 갇힐 확률이 늘어나는"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방식입니다. 한 마을 주민의 말처럼 "힘과 끈기, 일에서 질자 들어간 일은 다 된 것이 톱질, 전기질, 가래질"이라는 표현에서 이 방식이 단순한 고기잡이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이 특별한 이유는 삶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껏 내리쳐도 허탕일 수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물을 건지기도 합니다. 명당을 찾아 족대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 "이삭 줍듯 여기서 하나씩 하나씩 모으는" 모습에서 조급하지 않은 여유가 느껴집니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고기들이 밑으로 내려온다는 경험적 지식, 물의 깊이와 진흙의 상태를 파악하는 감각 등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입니다.
가래치기는 요령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끈기와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핵심입니다. 60년을 같은 마을에 살며 매년 이 행사를 반복한 주민들은 말없이 이 감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관계가 자주 끊기고 재설정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오래 이어진 공동의 경험 자체가 이미 귀한 자산입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아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물천찜 별미에 담긴 정성과 시간의 맛
가래치기로 잡은 물고기는 물천찜이라는 남도 지방의 별미로 재탄생합니다. 푸짐하게 넣은 묵은지 무, 고구마대에 고추장과 마늘 양념을 잘 버무리고, 오늘 잡은 싱싱한 붕어와 가물치를 넣어 가마솥에서 두어 시간 끓여내는 이 음식은 단순한 요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양념이 고루고루 배도록 속을 꽉꽉 채워주는 게 맛의 비결"이라는 설명처럼, 여기에는 서두르지 않는 시간의 미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천찜을 만드는 과정은 마을 공동체의 협업이기도 합니다. "우리 친구들 모이면 주방장이야"라는 농담 섞인 말처럼, 사람 귀한 초원에서는 뭐든 스스로 해결하다 보니 기술 하나씩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불을 지피고, 누군가는 양념을 버무리고, 누군가는 가물치를 손질해 막걸리에 재웁니다. "막걸리로 빛이야 꾸들꾸들하고 비린내 안 나고" 맛있게 만드는 방법도 직접 터득한 노하우입니다. 이런 과정들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각자의 역할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자박자박 오랜 시간 끓여낸 물천찜"이 완성되면 본격적인 나눔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손으로 찢어서 다 같이 이렇게 먹어야 맛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들에게 음식은 개별적으로 소비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숟가락에 똘똘 모아 입에 넣는 그 순간, "돈 주고도 못 사는 맛"이 완성됩니다. 이것은 재료의 신선도나 조리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맛입니다. 함께 고생하며 잡은 고기, 여럿이 모여 정성껏 만든 음식,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과 나누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맛입니다. 가물치회 역시 "민물고기 회로는 최고"라며 자랑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단순한 식도락을 넘어선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60년 지기 공동체가 만드는 진짜 풍요로움
이 저수지 물 빼기 행사의 진짜 주인공은 물고기가 아니라 60년 지기 친구들입니다. "덕분에 매일같이 만나고 있다"는 표현처럼 이들의 관계는 특별한 날에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이 행사는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1년 동안 기다렸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행사는 지난 농사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의식이자, 함께한 시간을 확인하는 연례행사입니다.
이 공동체의 특별함은 경쟁보다 공존을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몇 마리를 잡았는지"보다 "누가 어디서 미끄러졌는지, 누가 허탕을 쳤는지" 같은 이야기가 더 오래 남습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아도 웃고, 남이 잡은 고기를 보고 배 아파하면서도 결국엔 같이 나눠 먹는" 풍경은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나는 물고기 대신 세월을 잡고 있다"는 표현은 이 행사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 말입니다. 고기를 잡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의식인 것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세대를 넘어 이어집니다.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했던 거, 우리 아버지가 하던 거, 우리가 하고 있어"라는 말에서 이 전통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내들도 이 행사를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아무리 힘없다가도 아프다 해도 그거는 하러 가"라며 남편들의 설렘을 이해하는 모습, "나중에 먹을 때는 김치가 절대 맛있다"며 기꺼이 일거리를 맡는 모습에서 이 공동체가 남성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럿이 먹으니까 훨씬 더 맛있다"는 단순한 문장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저수지 물빼기 행사는 비효율적이고 촌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촌스러움 속에 진짜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관계의 풍요, 시간의 풍요, 그리고 함께하는 즐거움의 풍요입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것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촌스러워서 더 흐뭇한 추억 하나가 쌓여갑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이들은 추억이 쌓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기행 - 시골의 맛 2부 고기 잡으러 저수지로/한국기행: https://youtu.be/-OxaCtB5YOk?si=LuTyw948HcRmRT4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