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그저 예쁜 장식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여행 중 유럽의 성당에 들어가면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김인중 신부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제가 얼마나 표면만 봤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데코레이션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 속에는 빛을 통과시키는 도구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자신을 비우고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장식이 아니라 빛을 통과시키는 도구
스테인드글라스는 왜 중요할까요? 김인중 신부님은 이것을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어둠을 헤쳐내는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봤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빛은 꺼지지 않는 희망"이라고 말하며, 그 빛을 사람들 가슴속에 안기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가 해왔던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저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나 남들의 평가에 더 신경 쓴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는 작품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위에서 밀어준 힘에 의해 도구가 되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 브리우드의 바실리카에 그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후, 성당 전체가 달라졌다는 증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빛이 매 순간 변하면서 공간의 분위기가 살아났고, 신자뿐 아니라 믿음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 앞에서 무언가를 느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예술이 가진 힘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형태나 색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안을 통과하는 것, 즉 빛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빛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만들어냅니다.
추상 미술 속에서 각자의 자유를 발견하다
김 신부님은 "추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추상 미술을 어려워했습니다.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 없고, 해석도 애매해서 멀게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다큐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추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각자의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는 성모 마리아를 찾고, 누군가는 그냥 빛과 색을 봅니다. 그 자유가 오히려 더 진짜 같았습니다.
다큐에는 한 마을 사람이 김 신부님의 작품에 대해 불만을 표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모 마리아나 예수의 형상을 보고 싶어 했던 그 사람은 추상적인 작품 앞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 신부님은 그 반응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예술이 주는 해석의 자유, 그리고 그 자유가 주는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시골 교회에 찾아온 기적 같은 선물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오르냐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꿈꾸기에는 너무 작고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주임 신부는 "우리는 너무 작은 시골 교회라서 감히 스테인드글라스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 김인중 신부님께 메시지를 보냈고, 2주 후 그가 직접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좋습니다. 당신의 발을 노래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곳이지만,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기적 같은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죠.
김 신부님은 프랑스 곳곳의 작은 성당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돈이 많지 않았고, 유명한 배경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나누는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다큐에는 한 농부 부인이 남편을 잃고 슬퍼하다가 김 신부님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녀는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했고, 이후 동물이 죽을 때마다 손주들이 "괜찮아, 할아버지랑 같이 갔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예술이 사람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해바라기처럼 빛을 향해 고개를 들다
김인중 신부님은 자신을 해바라기에 비유했습니다. "해가 없으면 해바라기는 희망이 없는 꽃이 될 것 같다"고 말하며, 비가 오는 날에도 해를 기다리는 해바라기처럼 자신도 계속 위를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비유가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20년 전의 빛나는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통과시키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수녀원을 방문한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곳의 수녀들은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침묵의 공간에서 세상의 모든 근심을 받아들이며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에서 김 신부님과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겉으로는 고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품고 전달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점이요. 그는 침묵, 기도, 일이 자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제 삶에서도 그런 요소가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종교 다큐라기보다 한 사람의 고백을 듣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김인중 신부님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을 전달하고, 자신을 비우며,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보다 그 안을 통과하는 빛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을 도구로 삼아 무언가를 통과시키는 삶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