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더 이상 과거의 산업이 아닙니다. 한 농부가 네덜란드에서 본 충격적인 광경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45명의 교육생 중 단 한 명만이 도전했던 스마트팜,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집요한 열정과 희생의 이야기를 통해 농업 혁신의 진짜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네덜란드 교육에서 발견한 농업의 미래
부여군은 젊은 농업인들을 선발해 네덜란드로 15일간의 교육을 보냈습니다. 이 교육에 참가한 45명 중 한 명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평당 40kg을 수확하면 잘하는 편이었지만, 네덜란드의 스마트팜은 같은 면적에서 200kg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5배가 넘는 생산성 차이는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농업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그는 이 광경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해도 농사지을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방문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일주일도 채 못 돼 다시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올랐고, 이번에는 1,000만 원을 직접 내고 혼자 떠났습니다.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운영 체계를 파악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급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세 번째 네덜란드행으로 이끌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에서 그는 온실 안의 자재와 설비만을 집중적으로 관찰했습니다. 보고 확인하고, 또 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마침내 결심을 굳혔습니다. "지금 들어가면 내가 하고 있는 온실을 다 부숴 버린다." 이 결정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45명의 교육생 중 오직 그만이 스마트팜을 시작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는 땅을 임대해서 하우스를 짓고 농사를 짓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훨씬 더 절박했고, 그 절박함이 열정으로 전환되었던 것입니다.
농업 사업화를 통한 극적인 성장 스토리
2013년 스마트팜을 시작한 첫해, 그의 매출은 9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기존에 4억 원 정도였던 매출이 두 배 이상 뛴 것입니다. 이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15년 45억 원을 투자해 7동의 온실을 추가로 건설했습니다. 45억 원은 대출과 매출로 충당했고, 그는 하루 20시간씩 일하며 1년 만에 빚을 모두 갚아냈습니다. 혼자서 1인 7~8 인력의 역할을 해냈던 것입니다.
농사를 짓고, 선별하고, 유통하고, 물류를 처리하고, 정산 작업을 하고, 세무와 회계까지 도맡았습니다. 젊었기에 두세 시간만 자도 버틸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은 성공 뒤에 숨겨진 엄청난 희생을 보여줍니다. 4,000평에서 시작해 7,000평, 9,000평으로 규모를 키워가며 그는 단순한 농부에서 농업 사업가로 변모했습니다.
그의 스마트팜은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린 묘종을 한쪽 끝에 심으면 컨베이어 벨트가 21일에 걸쳐 천천히 이동하며, 다른 쪽 끝에 도착했을 때는 수확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하루 평균 4~6톤의 샐러드 채소가 생산되며, 이 시스템은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하루에 5만 개의 파종이 이루어지고, 수확된 채소는 바로 포장실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시스템화는 그가 네덜란드에서 보고 배운 것을 한국 현실에 맞게 구현한 결과입니다.
그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 믿었기에, 지금도 직접 재배 현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철저함이 그를 네덜란드 본사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사업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농부의 마음을 잃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진짜 경쟁력입니다.
코스닥 상장과 농업의 새로운 위상
그는 농업 분야로는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상장 전 일부 주식을 팔아 현금 100억 원을 확보했고, 그중 30억 원을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나머지 돈으로 그가 산 것은 화려한 명품이 아니라 상징적인 트랙터였습니다. "농사를 지어서도 이 정도는 탈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담은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가방은 차를 살 때 주는 기본 제공품이고, 집에는 술 살 때 받은 가방도 두 개 있습니다. 지갑에는 주민등록증과 현금 50만 원 정도만 들어 있습니다. 소비를 최소화하고 다시 농업에 재투자하는 그의 태도는 단순한 검소함이 아니라 산업을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는 지역 농가와 청년들에게 스마트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습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농가를 발굴해 자금을 지원하고, 시설 규모화를 돕습니다. 농업이 제조업보다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 기회를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은 10년 가까이 일했지만 여전히 과장 직책에 머물러 있습니다. 6시 반 출근에 평균 밤 11시 퇴근이라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아버지의 1%만 따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무뚝뚝합니다. "잘해라"라는 짧은 한마디가 전부이지만, 그 안에는 신뢰와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멘토이자 부모로 존경하며 "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옆에 계시고, 혼낼 때 또 혼내 주시고"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성과 중심 문화의 엄격함과 가족애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론)
이 이야기는 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농업이 혁신 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45명 중 혼자만 시작했다는 사실은 막대한 자본과 리스크라는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루 20시간 노동이라는 극한의 희생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도전은 기회를 잡는 사람에게 농업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제공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GNfVtNHnjLg?si=KBNggwtDDa2VIQz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