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역사서입니다. 두 책은 모두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서술 방식과 목적, 역사관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삼국사기는 관찬 정사로서 국가 중심의 기록을 추구했으며, 삼국유사는 구비 전승과 불교 중심의 사상을 통해 민간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했습니다. 이 두 사서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과 그 의미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1. 편찬 목적과 시대적 배경의 차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서로 다른 시대적 맥락과 목적을 바탕으로 편찬되었습니다. 먼저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년), 김부식에 의해 왕명으로 편찬된 정사(正史)입니다. 이는 국가의 정통성과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목적이 강했으며,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 기록에 있어 엄격한 사실성을 추구했습니다. 김부식은 신라계 문벌 귀족이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습니다. 이는 당시 정치적 정세와 신라 중심의 귀족 사회 구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면,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편찬한 책으로, 불교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구비 전승, 설화, 민간 신앙 등을 포괄적으로 담았습니다. 일연은 전국을 돌며 수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닌, 민중의 기억과 종교적 신념을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삼국유사는 국가 공인 프로젝트가 아닌 일연 개인의 종교적·문화적 사명감에서 나온 결과물로, ‘정사’보다는 ‘사료집’ 혹은 ‘문화적 보고서’로 평가됩니다. 이처럼 두 책의 탄생 배경은 각각 국가 중심적 질서 정립과, 민간 중심의 역사 구제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됩니다.
2. 서술 방식과 내용 구성의 차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구성 형식부터 큰 차이를 보입니다. 삼국사기는 기전체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왕들의 연대기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즉, ‘본기’를 중심으로 하여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며, 이에 따른 인물열전이나 지리지를 부속 형태로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나라의 사마천이 쓴 ‘사기’를 모델로 한 전형적인 정사 체계로, 객관성과 공적 사실의 축적에 중점을 둔 서술입니다. 따라서 신화적 요소나 민간 설화는 거의 배제되며, 대신 국가적 사건과 정치 중심의 기록이 주를 이룹니다. 반면 삼국유사는 기본적으로 편년체를 따르지 않으며, 이야기식 구성과 설화 중심의 내용 전개가 특징입니다. ‘기이(紀異)’ 편을 비롯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등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 장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신비적 요소와 불교적 상징을 담아 전개됩니다. 예를 들어 단군 신화, 알영 설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등은 삼국사기에서는 다루지 않거나 간단히 언급되었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져 오늘날 우리가 고대 신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삼국유사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닌 문화적, 종교적 콘텐츠를 담은 ‘인문 보고서’로서의 성격을 지님을 보여줍니다.
3. 역사관과 후대 영향력의 차이
두 사서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역사관’입니다. 삼국사기는 유교 중심의 합리주의적 역사관을 따르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도덕적 시각으로 분석합니다. 특히 김부식은 역사란 군주의 행적과 정치적 성공을 중심으로 기술되어야 하며, 인간의 도덕적 결함이 사회 혼란의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서술에는 군주의 덕과 실패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서술이 상대적으로 짧거나 평가절하된 부분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 삼국유사는 불교적 윤회와 업보의 개념을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해석합니다. 일연은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인연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비한 이야기나 기적, 전생의 연관성을 중요하게 다루며, 당시 민중이 체감하고 믿었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 같은 관점은 오히려 근대 이후 민족주의 역사관이 대두되면서 삼국유사에 대한 재조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연이 기록한 단군신화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기원 정립에 있어 핵심 사료가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교육과 문화 콘텐츠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삼국사기는 관점의 통일성과 국가 중심의 역사 해석에 강점이 있지만, 문화와 신화를 소외시킨 한계가 있으며, 삼국유사는 객관성의 부족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중적 감성과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결론: 두 사서의 공존, 역사를 풍성하게 만들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서로 다른 목적과 배경에서 탄생했지만, 어느 하나만으로는 고대 한국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는 국가의 질서와 정치의 기록을 중심으로 한 객관적 역사 서술에 집중했다면, 삼국유사는 그 틈에서 잊히기 쉬운 민간의 이야기와 문화적 정서를 담아냈습니다. 두 책은 각각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오늘날에는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보완적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과 감정,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 두 사서의 존재는 그러한 이해에 깊이를 더해주며, 우리가 과거를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함께 읽고 비교하는 일은 단순한 학문적 분석을 넘어, 역사 속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