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살이 찌는 건 순전히 의지력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뚱뚱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그냥 덜 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정작 제 생활을 들여다보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만의 원인이 의지력, 유전, 환경 세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스스로를 탓하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의지력만의 문제일까: 칼로리 균형과 그 너머
흔히 살이 찌는 원인을 설명할 때 에너지 균형(Energy Balance) 개념이 먼저 나옵니다. 에너지 균형이란 섭취 칼로리에서 소비 칼로리를 뺀 값으로, 이 값이 양수이면 지방이나 근육의 형태로 몸에 축적된다는 원리입니다. 성인 기준 하루 필요 칼로리는 평균 1,700~2,500kcal 수준인데, 이를 지속적으로 초과하면 체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논리만 보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된다. 실제로 식습관과 운동으로 체형을 바꾼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고, 그런 사례들이 의식적인 선택의 힘을 보여주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저도 "의지가 부족한 거 아닌가" 하고 자책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이면, 밥을 먹고도 금방 입이 심심해지고 결국 과자나 빵에 손이 갔습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뭔가를 씹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그냥 의지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반복적인 패턴이었습니다.
렙틴(Leptin)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조금 납득이 됐습니다. 렙틴이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어 뇌에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으로, 이 호르몬이 충분히 생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먹어도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수면 부족이 렙틴 분비를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제가 잠 못 잔 날에 유독 더 먹었던 것도 단순한 의지력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유전과 장내 미생물: 내 몸이 먼저 결정한다
유전이 체형에 영향을 준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습니다. 신진대사(Metabolism) 속도, 공복감 수준, 지방 축적 방식까지 유전자가 관여합니다. 신진대사란 섭취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저장하는 일련의 생화학 반응을 말하는데, 같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이 속도가 빠른 사람은 에너지를 바로 소비하고, 느린 사람은 지방으로 저장하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드문 사례지만 단일 유전자 변이(Monogenic Obesity)가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단일 유전자 변이란 특정 유전자 하나의 이상으로 비만이 유발되는 경우를 말하며, 프레더 윌리 증후군이 대표적입니다. 이 증후군은 15번 염색체 유전자의 비활성화로 발생하며, 환자는 두 살 무렵부터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의 공복감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 장내 미생물(Gut Microbiome)까지 더하면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집니다. 장내 미생물이란 우리 소화관에 서식하는 수조 개의 세균 군집으로, 단순히 소화를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식욕, 포만감, 특정 영양소의 흡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 체중 감소와 연관된 크리스텐세라 미누타(Christensenellaceae minuta)가 증가하는 반면, 지방이 많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후벽균(Firmicutes)이 늘어나 에너지 흡수율이 높아지고 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023년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 군집은 주거 지역의 환경오염 수준, 위생 상태, 신선 식품에 대한 접근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Nature). 이는 식단 하나만 바꾼다고 해서 유전이나 환경적 영향을 완전히 상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만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에너지 균형: 섭취 칼로리와 소비 칼로리의 차이
- 렙틴 호르몬: 포만감 신호를 담당하며 수면 부족 시 분비 억제
- 신진대사 속도: 유전자 영향을 받으며 개인차가 큼
- 단일 유전자 변이: 특정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조절 불가 공복감
- 장내 미생물 구성: 식단 및 생활환경에 따라 변화하며 식욕에 영향
환경이 선택을 만든다: 실천 가능한 작은 변화
환경의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이민자 연구입니다. 비만율이 낮은 국가 출신의 이민 1세대는 고향의 전통 식단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미국처럼 가공식품 접근성이 높은 환경에서 자란 2세대는 체형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권이 바뀌면 체형도 바뀐다는 건 환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적극적인 변수라는 걸 말해줍니다.
음식의 가시성과 거리만 바꿔도 소비량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식당 실험에서 기름진 음식을 통로에서 약간 멀리 옮기는 것만으로 소비량이 8~16% 줄었고, 대학생 대상 실험에서는 건강에 해로운 간식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소비량을 최대 6분의 1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Cornell Food and Brand Lab).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간식을 서랍 안에 넣어두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손이 가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눈에 보이면 먹게 되고, 없으면 생각보다 잘 안 찾게 되는 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설계의 문제였습니다. 요즘은 배가 고플 때 바로 간식으로 손 뻗는 대신 물을 한 잔 먼저 마시거나 단백질이 포함된 음식을 먼저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예전보다 폭식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환경이 선택지를 규정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 강력한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도 결국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비만이 의지력 부족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입니다. 그렇다고 유전이나 환경 탓이라며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태도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를 탓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왜 자꾸 먹고 싶은지 원인을 살펴보고 환경과 습관을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과 한 조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거나, 간식을 눈에 안 띄는 곳에 두는 것처럼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