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 바다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완도 고금도의 김양식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단순한 먹거리 생산을 넘어 해양 생태계가 지닌 탄소 흡수 능력으로 이어집니다. 블루카본이라는 개념은 해조류, 갯벌, 잘피숲 같은 해양 자원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장기간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청사진에는 과연 그림자는 없을까요? 무분별한 확대와 상쇄 논리의 함정, 그리고 진정한 기후 대응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해조류 양식, 검은 보석에서 푸른 탄소로
완도 고금도 앞바다에서는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식 김양식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겨울철 찬 바닷물 속에서 천천히 자란 김은 1월부터 2월 초까지 가장 맛이 좋으며, 가을 첫 수확부터 이른 봄까지 어민들은 최대 여섯 번 김을 거둡니다. 과거 대나무와 자연 포자를 이용한 재래식 방식에서 현재는 기계화되었지만, 여전히 고된 노동이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자연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김은 매일 품질이 달라지며, 수확된 김은 위판장 경매를 거쳐 가공업체로 보내집니다.
한때 잡초 취급을 받던 김은 이제 '검은 보석'이라 불리며 122개국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완도 바다는 김뿐 아니라 미역, 다시마, 매생이 등 다양한 해조류의 보고입니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수온, 맥반석 해저 지형은 해조류 생장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해조류 양식은 담수와 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방식으로, 해양 오염을 줄이는 역할까지 합니다.
최근 연구를 통해 해조류가 상당한 탄소 흡수·저장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가치가 조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김, 미역, 다시마 같은 양식 해조류는 높은 빛 노출과 낮은 수온 조건에서 탄소 흡수 효율이 높습니다. 국내 연구진은 해조류가 물속에 안정적인 형태의 탄소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해조류 양식은 먹거리 생산을 넘어 탄소 저감, 해양 생태 보호, 지역 소득 창출까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긍정적인 전망에는 비판적 시각도 필요합니다. 해조류 양식이 무분별하게 확대될 경우 해양 경관 훼손이나 생태계 단순화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탄소 흡수량이 수치로 제시되지만, 그 효과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안정적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습니다. 해조류가 흡수한 탄소가 실제로 얼마나 오랫동안 바닷속에 저장되는지, 해조류가 죽은 이후에도 그 탄소가 다시 대기로 방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탄소 저장, 바다가 품은 기후 해법의 실체
완도의 해조류 양식장은 위성사진을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나사와 세계자연기금 등 국제기관들은 해조류의 '블루카본'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블루카본은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를 의미합니다. 탄소는 블랙카본, 그린카본, 블루카본으로 나뉘며, 블루카본은 해초대, 염습지, 맹그로브 같은 연안 생태계에 저장됩니다. 이들은 전체 해저 면적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바다 탄소 저장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영국 플리머스에서는 해초대를 복원하는 '블루메도우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해초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퇴적층에 탄소를 저장하며 수백 년간 대기로 방출되지 않습니다. 국제기구 IPCC는 해초대, 염습지, 맹그로브를 공식 블루카본 자원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과 개발로 이들 생태계는 빠르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피를 활용한 바다숲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잘피는 뿌리와 잎 전체로 탄소를 흡수하며, 해양 생물의 서식지이자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완도 해역의 잘피숲은 연간 수만 대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탄소량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갯벌 역시 중요한 블루카본 자원입니다. 우리나라 갯벌에는 수백만 톤의 탄소가 저장돼 있으며, 미세조류인 규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고 퇴적층에 가둡니다. 갯벌은 공기와 차단된 환경 덕분에 탄소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탄소 저장 메커니즘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블루카본이 마치 만능 해결책처럼 비칠 위험성도 인지해야 합니다. 기업이나 국가가 탄소 배출을 줄이기보다는 블루카본에 의존해 '상쇄'하려는 방식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합니다. 진정한 기후 대응은 배출 자체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블루카본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본질적인 감축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탄소 저장의 장기적 안정성을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과학적 과제로 남아 있으며, 생태계 변화나 기후 조건에 따라 저장된 탄소가 다시 방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 자연 기반 해법의 명암
전 세계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 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블루카본은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다는 단순한 자원이 아닌, 기후 위기를 막을 중요한 해답으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푸른 탄소의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조됩니다.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기후 변화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블루카본이 국제적으로 공식 인정되었을 때, 그 이익이 대기업이 아닌 지역 어민과 공동체에게 공정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요? 탄소 크레딧 시장이 형성되면 자본의 논리가 개입하면서 실제로 바다를 지켜온 사람들이 소외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블루카본 프로젝트가 대규모로 추진될 경우, 기존 어업 활동이나 지역 공동체의 생계에 미칠 영향도 신중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자연 기반 해법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인간의 배출 감축 노력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블루카본 보호와 복원은 화석연료 사용 감축,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같은 근본적인 기후 대응 정책과 함께 추진되어야 합니다. 바다를 해결책으로 삼기 전에, 우리는 그 바다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해양 생태계는 복원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파괴하는 데는 몇 년이면 충분합니다.
결국 블루카본이라는 개념은 해양 생태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관점입니다. 바다는 더 이상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생명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탄소 계산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 지역 공동체의 권리, 그리고 진정한 배출 감축 노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푸른 탄소의 가치를 선택하되, 그것이 또 다른 착취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책임 있는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wstsUNXlS8U?si=C0L1SWEO3ePriBk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