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오래된 기기를 억지로 고쳐 쓰면서 "이걸 아직도 되게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적,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경험을 꽤 해봤는데, 이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그 감각이 갑자기 되살아났습니다. 보이저 1호는 240억 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아직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1970년대 부품으로, 손상된 메모리로, 매년 4W씩 줄어드는 전력으로.

버티는 기계 — 한계에 가까운 시스템이 살아남는 방식
보이저 1호가 현재 약 245억 km 거리에 있다는 수치는 들어도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거리보다 신호의 상태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구에 도달하는 전파 세기가 약 10의 -21승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연적인 우주 잡음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정도입니다. 그 신호를 걸러내서 데이터로 만든다는 게, 사실 기술의 영역보다 집요함의 영역처럼 느껴졌습니다.
2023년에는 보이저가 보내온 데이터가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적이 있습니다. 원인은 내부 메모리 일부가 손상된 것이었는데, NASA는 기존 프로그램을 고치는 대신 정상 메모리 영역으로 코드 자체를 옮겨서 다시 실행되도록 했습니다. 직접 접근이 불가능한 장치에 대해, 신호 지연이 편도 22시간인 조건에서 이루어진 원격 재구성이었습니다. 명령 하나를 보내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최소 이틀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이 정도면 버그 수정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작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상적인 소프트웨어 유지보수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이 방식은 RTG(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의 출력 감소와도 연결됩니다. RTG란 방사성 물질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열을 전기로 변환하는 발전 방식으로, 핵전지라고도 불립니다. 이 전력이 매년 4W씩 줄어들기 때문에 코드 재배치도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남은 전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저는 보이저의 일부 회로가 낮은 온도에서 오히려 잡음이 줄어드는 특성을 보인다는 부분이 꽤 의외였습니다. 극저온 환경에서 열잡음(thermal noise)이 감소하는 물리적 특성 덕분인데, 열잡음이란 온도가 높을수록 회로 내 전자들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전기적 간섭을 말합니다. 오래된 장비가 오히려 특정 조건에서는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건, 노화를 단순히 성능 저하로만 보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지구의 흔적 — 우리는 이미 100광년 반경에 흔적을 퍼뜨렸습니다
보이저를 들여다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반대 방향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외부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지구 자체가 외부에서 얼마나 드러나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의 약 30%를 반사합니다. 이 반사율을 알베도(albedo)라고 하는데, 알베도란 천체가 입사하는 전자기 복사를 반사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지구의 평균 알베도는 약 0.30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민감한 장비를 가진 외부 관측자에게는 빛을 내는 작은 점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다만 태양 빛이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직접 관측하려면 코로나그래프(coronagraph)가 필요합니다. 코로나그래프란 중심 별의 빛을 인위적으로 가려서 주변 행성을 따로 관측할 수 있게 만드는 장비입니다.
그러나 저는 빛보다 전파 쪽이 훨씬 더 솔직한 흔적이라고 봅니다. 1920년대 라디오 방송 이후 약 100년 동안 지구는 지속적으로 전파를 우주로 방출해 왔고, 이 신호들은 현재 반경 약 100광년 범위까지 퍼진 상태입니다. 이 안에 약 1만 개 이상의 별이 포함됩니다. 물론 일반 방송 전파는 역제곱 법칙(inverse square law)에 따라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히 약해집니다. 역제곱 법칙이란 신호 세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감소하는 물리 법칙으로, 거리가 10배 멀어지면 세기는 100분의 1로 줄어듭니다.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은 레이더 신호입니다. 고출력 군사용 레이더의 경우 EIRP(등방성 방사 등가 전력) 기준으로 10의 12승 수준까지 도달하기도 합니다. EIRP란 신호가 모든 방향으로 동일하게 퍼진다고 가정했을 때의 가상 출력값으로, 특정 방향으로 집중된 실제 신호의 강도를 표준화하여 비교할 때 씁니다. 이 정도 세기라면 이론적으로 수십 광년 거리에서 자연 잡음과 구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기 분광 분석까지 더하면, 지구는 단순히 밝은 점이 아니라 산업화의 흔적이 담긴 행성으로 드러납니다. 산업혁명 이전 약 28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현재 약 420ppm까지 증가한 것은, 적외선 흡수 패턴으로 외부에서도 식별 가능한 변화입니다(출처: NASA 지구 관측 데이터).
우주 소통 — 아레시보 메시지가 남긴 질문
의도적으로 우주를 향해 신호를 보낸 사례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74년의 아레시보 메시지입니다. 당시 푸에르토리코에 있던 직경 305m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에서 약 450kW 출력으로 신호를 발사했고, 안테나가 신호를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면서 EIRP 기준 약 2×10의 13승 수준의 효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목표는 약 25,000광년 거리의 구상성단 메시에 13이었고, 신호는 1679비트로 구성되어 인간의 숫자 체계, DNA 구조, 태양계 구조, 인체 형상 등을 담았습니다.
이 신호는 현재까지 약 50년을 이동했으니 실제로는 50광년쯤 나아간 상태입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약 24,950광년이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숫자를 보고 좀 허탈했습니다. "메시지를 보냈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멀었고, "아직 가고 있다"고 하기엔 도착 여부 자체가 의미를 잃는 시간 스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보면, 이건 수신 여부보다 발신 자체에 의미를 두는 행위라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 메시지가 실제로 누군가에게 닿을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그 신호를 보내기 위해 인류가 가진 기술 전부를 집결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록입니다. 외계 신호 탐색 분야에서도 협대역 신호(narrowband signal)가 핵심 판별 기준으로 쓰입니다. 협대역 신호란 매우 좁은 주파수 범위에 에너지가 집중된 신호로, 자연 현상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특성 때문에 인공 신호의 지표로 봅니다. 아레시보 메시지가 바로 이 조건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외계 문명이 지구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충분히 강한 신호가 실제로 해당 위치까지 도달할 것
- 그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장비(현재 인류 수준 이상)를 보유할 것
- 수신한 신호를 자연 잡음이 아닌 인공 신호로 판별할 수 있을 것
세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신호는 그냥 지나갑니다. 기술보다 확률의 문제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SETI(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 프로젝트 역시 수십 년째 이 조건을 충족하는 신호를 찾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결과는 없습니다(출처: SETI Institute).
골든 레코드 — 신호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는 것
보이저에는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가 실려 있습니다. 금으로 도금된 구리 디스크로, 지구의 소리, 음악, 55개 언어, 이미지 정보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력 없이도 물리적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보이저 1호의 현재 속도는 태양 기준 초속 약 17km, 시속으로는 약 6만 km입니다.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도달하는 데는 약 7만 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러나 우주 공간은 대기나 침식이 없기 때문에 물리적 충격이 없는 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고, 미세 입자나 방사선에 의한 손상은 매우 느리게 축적됩니다. 수억 년,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억 년 동안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이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낀 건, 보이저가 통신 중인 시기에는 데이터를 전달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신호가 끊긴 이후에는 존재 자체가 정보가 된다는 점입니다. 특정 시점에, 특정 기술 수준을 가진 문명이, 특정 방향으로 무언가를 보냈다는 물리적 증거로 남는 것입니다. 탐사도, 메시지도, 레코드도 결국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시도라는 점에서요.
보이저의 통신이 끊기는 시점은 대략 2027년에서 2030년 사이로 예상됩니다. 갑자기 꺼지는 것이 아니라 장비 하나씩 순차적으로 멈추다가 마지막 신호만 남게 됩니다. 저는 이 마무리 방식이, 어떤 면에서는 이 기계가 살아온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만 남기면서 버텨온 47년과 닮아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NASA의 보이저 미션 페이지에서 현재 위치와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