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대부분 초고층 빌딩과 화려한 쇼핑몰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두바이가 단순히 '돈으로 쌓아 올린 도시'라는 선입견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바다를 메워 만든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부터, 좁은 골목에 바람탑이 서 있는 알 파히디 역사 지구, 그리고 여전히 전통 목선이 오가는 두바이 크릭까지. 미래와 과거가 한 도시 안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팜 주메이라, 인간이 만든 야자수 섬
팜 주메이라는 중앙의 줄기와 17개의 잎, 초승달 모양의 방파제로 이루어진 인공섬입니다. 줄기 길이만 약 4.8km에 달하고, 17개의 잎 부분에는 고급 빌라 약 2천 채가 들어서 있습니다. 개인 해변을 갖춘 주택도 많고, 가장 비싼 곳은 60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숫자만 들어도 실감이 안 나는 규모인데, 이 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모노레일을 타는 것입니다.
저도 영상을 보면서 모노레일 장면에서 특히 몰입이 됐습니다. 야자수 줄기 부분을 따라 이동하며 양쪽으로 펼쳐지는 섬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마치 움직이는 전망대 같았습니다. 실제로 관광객들이 이 전망을 보기 위해 왕복 모노레일 투어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아틀란티스 호텔과 최고급 리조트들은 두바이가 왜 '꿈의 도시'로 불리는지 보여주는 상징 같았습니다.
다만 이런 화려함 뒤에는 환경 문제나 건설 과정에서의 노동 이슈도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인공섬 건설이 해양 생태계에 미친 영향이나, 실제로 그 공사를 누가 어떤 조건에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점은 아쉬웠습니다. 시각적으로는 압도적이지만, 그 이면까지 보여줬다면 훨씬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알 파히디 역사 지구, 시간이 멈춘 골목
팜 주메이라의 화려함과는 정반대로, 알 파히디 역사 지구는 19세기 페르시아만을 건너온 상인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입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호와 진흙, 석고로 지어진 모래색 건물들이 이어지고, 곳곳에 바람탑이 솟아 있습니다. 바람탑은 자연 냉방 장치로, 여러 방향에서 바람을 모아 실내로 내려보내는 구조입니다. 사막에서 에어컨 없이 살아남기 위한 지혜가 건축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겁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두바이가 단순히 돈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초고층 빌딩을 세우기 전에도 이곳 사람들은 자연과 싸우며 삶의 방식을 고민했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바람탑 같은 건축 지혜는 현대 기술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이 역사 지구가 현재 두바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실제로 얼마나 보존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전통 가옥을 문화 교류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관광 상품으로만 소비되는 건 아닌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전통이 진짜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박제된 과거로만 남아 있는지까지 짚어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두바이 크릭과 아브라, 물 위를 잇는 전통
두바이 크릭은 올드 두바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수로입니다. 이곳을 건너려면 전통 목조 선박인 아브라를 타야 하는데, 요금은 1 디르함, 한국 돈으로 약 490원입니다. 두바이에서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이자, 수백 년간 사람과 물건을 날랐던 이동 수단입니다. 다리와 도로가 없던 시절, 아브라는 두바이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였습니다.
저는 아브라를 타는 장면을 보면서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지인도, 상인도, 여행자도 함께 타고, 항해사가 손으로 요금을 받으며 수신호로 확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금제로 운영되고, 엔진은 달렸지만 여전히 손으로 방향을 조종하는 방식은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섞인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두바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브라에서 내리면 데이라 지역입니다. 이곳은 옛 상업 중심지로, 지금도 전통 시장인 수크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품목별로 나뉘어진 시장 구조도 독특했는데, 금시장, 향신료 시장 등이 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현대적인 쇼핑몰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금시장과 향신료 시장,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
데이라의 금시장은 중동 최대 규모로 손꼽힙니다. 600개 이상의 상점이 밀집해 있고, 진열장마다 금 장신구가 반짝입니다. 전통 디자인부터 현대적인 스타일까지 다양하고, 두바이의 순금 부가가치세는 5%로 한국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금반지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107억 원이 넘는 가치를 자랑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금시장이 단순히 상업 공간이 아니라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거래하고, 장인이 정교한 세공을 하고, 그 과정에서 전통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두바이가 현대 도시로 변모하면서도 이런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향신료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어서자마자 향이 확 퍼지고, 말린 레몬, 카다멈, 샤프란 같은 다양한 향신료가 쌓여 있습니다. 두바이 가정마다 음식 맛이 다른 이유는 향신료 레시피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김장을 담가 나눠주듯, 이곳에서는 할머니들이 직접 향신료를 말려 자녀들에게 나눠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전통 시장들이 관광지화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실제로 현지인들이 얼마나 이용하는지, 아니면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만 남아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두바이에 대한 제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화려한 인공섬과 초고층 빌딩만 있는 도시가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물론 환경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시각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여행기였습니다. 언젠가 직접 가본다면, 모노레일을 타고 팜 주메이라를 바라보고, 알 파히디 골목을 걸으며, 아브라를 타고 크릭을 건너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금시장과 향신료 시장에서 실제로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