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다니면 평생 안정 아닌가요?" 이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시대가 왔습니다. 입사 1년 만에 영업 1위를 찍고도 회사를 떠나는 청년, 부당함에 맞섰다가 조직 안에서 투명인간이 된 직장인의 이야기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제 주변에도 이런 선택을 한 친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결정을 보며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 세대가 이해 못 하는 퇴사 이유
고향으로 내려온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차갑습니다. "그렇게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는 질문 뒤에는 실망과 답답함이 섞여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에게 대기업은 곧 평생직장이었고, 성실히 일하면 회사 성장과 함께 개인의 삶도 나아지던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부모님은 "조금만 더 버텨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월급을 모아도 집 한 채 마련이 요원한 구조, 주 6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 속에서도 언제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아들 세대는 회사에 남아 있어도 미래가 불안하고, 회사를 나와도 막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고도 성장기에는 기업의 성장이 곧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졌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그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성과를 내도 보상이 충분히 돌아오지 않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받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청년들은 도전과 모험 대신 안정성을 선택하게 됩니다.
문제 제기했다가 조직에서 투명인간 된 날
한 청년은 회사 내부의 문제를 제기했다가 부당 해고를 당했습니다. 소송 끝에 승소해 복직했지만, 조직 안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의미 없는 업무만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침묵하지 않았다는 사실, 부당함에 맞섰다는 경험만은 남기고 싶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노골적인 배척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의미 없는 일만 맡겨지는 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조직은 생각보다 쉽게 개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요.
연차는 규정상 15일이었지만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웠고, 주말에도 업무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성공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침묵 대신 떠나는 쪽을 택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자고 다짐하면서요.
명문대 나와도 9급 공무원 택하는 이유
많은 청년들이 대기업보다 공무원을 선택합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받지만, 당사자에게는 예측 가능한 삶이 더 중요합니다. 나라가 유지되는 한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낮고, 노력한 만큼 비교적 명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성공이나 거대한 부가 아닙니다.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아이를 낳고 키워도 생계가 무너지지 않을 안정성, 소소한 소비를 죄책감 없이 할 수 있는 일상입니다. 솔직히 이건 사치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최소 조건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돈을 선택하면 시간을 잃고, 시간을 선택하면 경제적 여유를 포기해야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제 주변 친구들도 이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안정성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취업에 성공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성과를 내도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구조가 반복되면서 도전보다는 안전을 택하게 되는 겁니다.
청년들이 정말로 바라는 최소한의 것
청년들은 최소한의 공정성과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고, 정당한 문제 제기로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손해가 되지 않는 구조를 바랍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정답이라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던지며, 지금의 불안이 개인의 노력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시대적 조건의 변화 때문인지 묻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청년들의 선택을 도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저는 이것이 나름의 전략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버티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버티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다만 공무원이라는 선택 역시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조직 문화의 경직성이나 낮은 보상 체계 같은 다른 문제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안정성과 불안을 대비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최소한 예측 가능한 미래라도 보장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성장 시대의 출발선에 선 청년들은 더 이상 막연한 희망이나 희생을 강요받기보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원합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입니다. 시간을 지키겠다는 선택,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나약함이 아니라 달라진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