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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어두운 면 (조석고정, 영구음영, 전파천문학)

by oboemoon 2026. 4. 27.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달의 어두운 면'이라는 말을 아무 의심 없이 써왔습니다. Pink Floyd 앨범 제목에서도, 일상 대화에서도 그냥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있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제가 꽤 오래된 오해를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두운 면'과 '뒷면'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고, 정작 진짜 어두운 곳은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습니다.

달의 어두운 면
달의 어두운 면을 표현한 사진

조석고정과 달 뒷면, 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달이 항상 같은 면만 지구를 향하는 현상을 조석고정(Tidal Locking)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조석고정이란 천체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일치하여 한쪽 면이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달은 약 27.3일을 주기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지구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달의 같은 면인 근면(Near Side)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편, 즉 원면(Far Side)은 어두운 걸까요? 제가 처음 이 질문을 접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어둡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달의 원면도 한 달을 주기로 약 2주는 햇빛을 받고, 약 2주는 그늘에 있습니다. 근면과 받는 햇빛의 양은 거의 동일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원면의 밤하늘에는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반사된 빛, 즉 지구반사광(Earthshine)이 없으니 밤이 조금 더 어둡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파고들면서 흥미로웠던 건 달 위상 변화의 구조였습니다. 지구에서 보름달이 뜰 때는, 달에서 봤을 때 지구가 '그믐 지구' 상태입니다. 반대로 지구에서 초승달이 뜰 때는 달에서 보면 '보름 지구'가 빛납니다. 즉 달의 근면에서는 태양이든 지구든 항상 뭔가 빛을 내리쬐고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어둠'이 없습니다.

또한 달에는 지구 자전축 기울기(약 23.5도)와 달리, 공전 궤도면에 대한 달의 축 기울기가 고작 1.54도에 불과합니다. 이 차이가 나중에 설명할 영구음영지역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달 탐사의 역사를 보면, 소련의 Luna 3 탐사선이 1959년 최초로 달 원면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인류가 처음으로 그 반대편 지형을 확인했습니다(출처: NASA). 그전까지 수천 년 동안 달 원면은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였으니, '어두운 면'이라는 은유가 생겨난 것도 이해는 됩니다.

달 원면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햇빛을 받는 시간은 근면과 동일하며, '어둠'의 측면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 지구반사광(Earthshine)이 없어서 밤 시간이 근면보다 다소 어둡습니다
  • 전파(Radio Wave) 환경이 극도로 조용하여, 전파천문학 관측의 최적지로 꼽힙니다
  • 평균 고도가 근면보다 수 킬로미터 높고, 현무암질 바다(Maria) 지형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전파 환경 이야기는 제가 읽으면서 가장 뜻밖이었던 부분입니다. 태양계 안에서 발생하는 전파 신호의 대부분은 지구와 태양에서 나옵니다. 달 원면은 항상 지구를 등지고 있으니, 이 두 거대한 전파 발생원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됩니다. 쉽게 말해 태양계에서 가장 조용한 라디오 환경이 바로 달 뒷면인 셈입니다. 과학자들이 달 원면의 분화구에 대형 전파망원경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진짜 어둠은 극지방 영구음영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달에 진짜로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 이게 진짜 반전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달의 남극과 북극 근처에 있는 일부 충돌 분화구(Impact Crater) 내부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충돌 분화구란 소행성이나 운석이 천체 표면에 충돌하여 생긴 움푹 파인 지형으로, 대개 높은 테두리 벽과 깊은 내부로 이루어집니다. 달의 극지방에서는 축 기울기가 1.54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화구의 테두리 벽이 충분히 높다면 내부에는 어느 계절에도 햇빛이 한 줌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지역을 영구음영지역(Permanently Shadowed Region, PSR)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영구음영지역이란 달의 극지방 분화구 내부처럼 태양빛이 영원히 직접 닿지 않아 극저온 상태가 유지되는 구역을 의미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명을 처음 접하면 "분화구 안에 빛이 안 들어온다고? 그냥 그늘 아닌가?"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하지만 지구와 달리 달에는 대기가 전혀 없습니다. 빛을 산란시켜 그늘 안쪽을 밝히는 공기가 없고, 먼지가 떠다니며 간접광을 만들어 주는 구름도 없습니다. 그래서 테두리 벽 너머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구역은 말 그대로 완전한 어둠이 됩니다. 내부 온도는 최저 영하 173도(100K) 이하로 내려가며, 이 온도에서는 물 얼음(Water Ice)뿐 아니라 드라이아이스(이산화탄소 얼음), 심지어 메탄 얼음까지 수십억 년째 그대로 보존될 수 있습니다.

NASA의 달 정찰 궤도선(Lunar Reconnaissance Orbiter)이 남극과 북극 분화구를 고해상도로 촬영한 결과, 이 영구음영지역 안에 휘발성 물질이 풍부하게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출처: NASA Lunar Reconnaissance Orbiter). 특히 섀클턴 분화구(Shackleton Crater)는 남극에 위치한 대형 분화구로, 내부가 영구 음영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테두리 상단부는 거의 항상 햇빛을 받는 이른바 '영원한 빛의 봉우리(Peaks of Eternal Light)'를 갖추고 있어 탐사 기지 후보지로 자주 언급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글 전체에서 가장 실용적인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영구음영지역 안의 얼음을 녹여 식수와 산소를 만들고, 테두리 위 햇빛이 드는 지점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이론적으로는 지구에서 자원을 대량으로 가져오지 않아도 달 기지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걸 읽고 나서야 왜 여러 나라가 달 남극 탐사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지 비로소 납득이 됐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 영구음영지역을 선점하기 위해 핵 발전소 설치를 명분으로 배타적 구역을 선언하려는 움직임이 국가 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읽고 나서는, 순수한 과학 이야기가 순식간에 지정학 문제로 번지는 걸 느꼈습니다. 달도 결국 땅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건가 싶어서, 읽는 내내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달에 대해 이렇게 다시 들여다본 건 꽤 오랜만이었는데, 결국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개념일수록 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걸 다시 실감했습니다. '어두운 면'이라는 말 하나가 품고 있는 오해를 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영구음영지역, 전파천문학, 극지방 얼음이라는 훨씬 더 입체적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NASA의 달 탐사 관련 자료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소식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bigthink.com/starts-with-a-bang/dark-side-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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