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 돌봄은 더 이상 개별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직면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치매와 만성질환을 앓는 부모를 돌보는 자식들도 나이가 들고 병이 들면서, 전통적인 가족 돌봄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요양원은 여전히 두렵고 믿을 수 없는 곳으로 인식되지만,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족 돌봄의 한계와 개인의 희생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던 막내딸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기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하고 한국에 눌러앉은 사례는 오늘날 많은 가정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언니와 오빠는 먹고살기 바빴고, 나날이 위태로워지는 엄마를 모른 체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 생활이 이제 하나도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해요. 오빠는 자기는 못 모신다, 막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그럼 내가 모셔야지"라는 고백에서 가족 돌봄이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집중되는 불평등한 구조가 드러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돌봄을 제공하는 자식도 건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 지난 5년째 혈액 투석을 받아온 이는 병원에서 반나절 동안 힘든 투석을 받고 와서도 집에서 쉬지를 못합니다. 신장이 망가져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챙기는 게 먼저였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번아웃이 와요. 손쓸 수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내가 이러다가 인생 끝나면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라는 토로는 가족 돌봄이 개인의 효심만으로는 지속 불가능함을 증명합니다.
집에서의 돌봄은 안전성 측면에서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걸핏하면 가스를 끄는 것도 잊고, 계속 무한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치매 환자를 24시간 지켜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식이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스스로도 병들거나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가족만의 힘으로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효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과제입니다.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자녀 수는 줄어들면서, 앞으로는 가족 돌봄 자체가 더욱 비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양원 선택을 둘러싼 죄책감과 현실적 판단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요양원에 부모를 보내는 것을 죄책감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식 입장에서 이제 어머니를 시설에 모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그런 고민을 하게 됐더라고요. 그래서 참 어렵게 결정했죠"라는 고백은 이러한 심리적 부담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집에서 24시간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안전과 전문적인 돌봄을 생각했을 때 시설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머니를 3년째 요양원에서 모시고 있는 한 아들은 "저는 그 선택을 할 때 저를 생각하지 않고 과연 우리한테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그것만 생각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여기가 정말 편한 곳이고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만족도가 높아졌고, 항상 어머니를 지켜보시는 눈길이 있다는 점에서 집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집에서는 어머니 혼자 둘 수도, 식구들이 24시간 지켜볼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집에서 모시느냐, 시설에 모시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느냐라는 문제입니다. 좋은 요양원에서는 어르신의 일상적 욕구를 존중합니다. 막걸리 잔치를 열어 평생 즐겨온 술 한 잔의 기쁨을 허락하고, 피아노를 즐겨 치던 어르신을 위해 침대 바로 옆에 건반을 놔줍니다. "요양원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어르신이 삶을 살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엄마를 볼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던 어머니가 이제 웃으며 아들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요양원이 가족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공 인프라 부족과 돌봄의 질 격차
현실적인 문제는 좋은 요양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요양원 중에서 공공시설은 2%도 안 되며, 나머지는 모두 사설입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 시설과 달리 공공 요양원은 기저귀 값을 아끼거나 식비를 남기기 위해 돌봄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선호되지만, 턱없이 부족한 공급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설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아이들로 북적이는 학원가였던 곳이 저출생의 직격탄을 맞은 자리에 하나 둘 요양원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요양원 없는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가고 싶은 사람은 없는데 하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동산 중개 사이트엔 요양원 매물이 쏟아지고 있으며, 돌봄이 공공 서비스라기보다 하나의 시장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익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는 인력 부족이나 비용 절감 때문에 돌봄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종종 뉴스에 나오면서 사람들의 불신이 커졌습니다.
돌봄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은 요양보호사입니다. 좋은 요양원에서는 "어르신이 내일 갈아입을 옷을 고를 때까지 요양 보호사는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려 줍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어르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해 주거나 재촉하는 법이 없다"라고 합니다.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이며, "일을 함에 있어서 요양 보호사도 인정도 해주고 이렇게 이야기할 때도 귀 기울여 주고 그런 것들이 많이 달라"집니다. 반면 다른 곳에서는 "요양 보호사를 너무 좀 저기 어르신 돌봄에 있어서 취직 취업을 한다고 해야 되나" 정도로 취급했다고 합니다. "좀 사람도 못 봤다 그냥 그 정도였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너무 차이가 나는 거예요. 요양보호사에 대한 이게 처우가"라는 증언은 시설 간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자기 부모처럼 돌봐줄 착한 요양 보호사를 원하지만, 나쁜 요양원에서 좋은 요양 보호사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돌봄이냐? 우리가 사실은 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지만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르신한테 대하는 태도다. 그래서 함부로 오지 않는 것이 기본을 지키는 거예요. 무시하지 않는 것이 기본을 지키는 거고"라는 원칙이 실천되려면, 요양보호사가 존중받고 적절한 처우를 받는 환경이 필수적입니다. 공공 돌봄 인프라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준비하느냐가 앞으로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 돌봄은 이제 개인과 가족의 희생에만 기대서는 지속 불가능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요양원이 두려운 곳이 아니라 노년의 또 다른 삶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점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노인 돌봄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llGVPKJl0CA?si=QiMH79y5DRojem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