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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음악 다방을 찾아 떠나는 레트로 여행

by oboemoon 2025. 5. 2.

레트로 음악 여행
레트로 TV

옛 감성은 사라지고 디지털 음악이 너무 당연해진 시대,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수천 곡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낡은 턴테이블과 LP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먼지를 털어낸 오래된 음반을, 잡음이 섞인 스피커를, 그리고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아날로그 공간을 향해 가는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잊고 있던 감정을, 느림의 미학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공간들,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숨어 있는 레트로 감성 여행지를 소개한다. 단순한 복고풍 카페가 아니라, 진짜 오랜 세월 음악을 틀어온 곳, 이야기와 추억이 층층이 쌓인 공간들이다. 청춘의 한 시기를 음악과 함께 보내고 싶다면, 이 여행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조용한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대전 중구 선화동 ‘살롱 드 음악’ – 1970년대의 공기가 남은 곳

대전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화동 골목에 숨어 있는 ‘살롱 드 음악’은 진짜 음악 다방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다. 외관은 허름하고 간판조차 바래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벽에는 오래된 LP 자켓이 가득 걸려 있고, 음향기기는 40년 이상 된 앰프와 턴테이블이 여전히 현역이다. 이곳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곳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행위’를 존중하는 공간이다. 사장님은 매 시간 정해진 테마에 따라 직접 선곡한 곡을 틀어주시고, 손님은 조용히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음악을 감상한다. 특히 7080 세대의 음악뿐 아니라, 90년대 일본 시티팝, 한국 인디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LP로 준비되어 있어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무엇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정지된 시간감’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 다방에서는 1분이 1분으로 흘러간다. 음악이 시작되고 끝나는 그 모든 순간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 그 자체로 여행의 의미가 된다.

전북 전주 ‘청춘 음악실’ – 오래된 청춘들이 지키는 감성

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에는 그 명성 뒤로 조용히 숨겨진 음악 다방이 하나 있다. ‘청춘 음악실’은 1980년대부터 운영되어 온 공간으로, 여전히 당시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가게 내부는 나무 의자와 나무 테이블, 그리고 벽을 따라 진열된 수백 장의 LP로 가득하다. 주인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 DJ를 했던 분으로, 지금도 오후 3시부터는 직접 턴테이블을 돌리며 손님에게 음악을 선사한다. 특별한 건, 이곳에는 '음악 신청서'가 있다는 점이다. 손님은 신청서에 듣고 싶은 노래와 그 이유를 적어 내면, 주인은 사연과 함께 음악을 소개해준다. 이 작은 의식은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서, 사람 사이의 감정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전주는 관광지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여행 일정을 짜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조용한 오후, 창밖의 낙엽을 바라보며 흐르는 음악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전주의 ‘청춘 음악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작은 공연장이기도 하다.

강원도 강릉 ‘고요한 음악실’ – 바다 근처에서 듣는 아날로그 사운드

강릉은 감성 여행지로 각광받는 도시지만, 카페 거리나 해변 말고도 한적한 골목 속에 숨어 있는 음악 공간이 있다. 바로 ‘고요한 음악실’이다. 강릉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한 주택가에 위치한 이곳은 주택을 개조해 만든 작은 음악 다방으로, 하루에 딱 열두 팀만 받는 예약제 운영을 한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음악의 순도다. 외부 소음을 최소화한 구조와 고급 빈티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경험으로 바꿔준다. 오전에는 클래식과 재즈, 오후에는 70~80년대 한국 가요와 포크송이 주로 흐르며, 시간대별로 음악의 분위기를 조절해 준다. 특히,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어 창문을 열면 멀리서 파도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린다. 음악과 자연의 소리가 겹쳐질 때,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을 준다. 고요한 음악실은 이름 그대로 ‘고요함’을 경험하는 장소이며, 이곳에서의 감성은 다른 어디에서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다.

결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서,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하지만 진짜 감동은 많은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집중에서 나온다. 음악 다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감각을 다시 예민하게 만드는 장소다. 대전, 전주, 강릉—세 도시의 오래된 음악실은 단지 복고풍 인테리어로 포장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머무르게 하는 힘을 가진 곳들이다. 이곳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중심이며, 커피 한 잔의 여백 안에 지난 시절의 정서가 녹아 있다. 청춘의 한 시기를 감성적으로 보내고 싶다면, 이들 낡은 음악다방을 찾아 떠나보자. 당신이 잊고 있었던 감정,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감성이 이 오래된 공간 어딘가에서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에서 들었던 음악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떠올리게 해 줄 것이다. 레트로 음악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