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름을 가진 두 도시가 하나의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그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위치한 노갈레스는 국가의 번영과 빈곤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자원이나 문화가 아니라 '제도'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이 글에서는 갈라진 도시의 현실을 통해 제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그리고 그 구조적 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노갈레스, 국경 하나로 갈라진 두 개의 세계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와 멕시코 소노라주 노갈레스는 원래 하나의 도시였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이 이 지역을 매입하면서 국경이 생겼고, 1994년 장벽이 세워지면서 도시는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같은 문화와 역사,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지만, 제도의 차이는 삶의 수준을 극명하게 갈라놓았습니다. 미국 쪽 노갈레스는 안정된 소득과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발전한 반면, 멕시코 쪽은 빈곤과 범죄, 열악한 공공서비스에 시달리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이 극명한 차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경 양쪽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뿌리를 가졌고, 같은 환경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쪽은 비교적 안정된 정치 제도와 법치, 교육과 기회의 구조가 작동했고, 멕시코 쪽은 부패와 불평등이 일상화된 사회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국가의 부와 빈곤을 결정짓는 것이 자원의 양이나 문화적 특성이 아니라 제도라는 구조적 관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노갈레스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제도가 공정하고 권력이 분산되어 있으며 기회가 보장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를 배제하는 제도 아래서는 아무리 풍부한 자원과 인적 역량을 가져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는 단순히 국경 지역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분석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미국 제도를 이상적으로, 멕시코 제도를 실패 사례로만 구분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습니다.
제도의 힘, 식민지 유산에서 현대까지
멕시코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적인 석유 생산국이며 고대 문명을 이끌었던 풍부한 인적 자원을 보유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 절반 이상이 빈곤층에 머무는 이유는 정치·경제 제도의 문제에 있습니다. 멕시코 사회 전반에는 뇌물과 부패가 만연해 있으며, 행정과 사법, 치안까지 금전으로 거래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다수는 착취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6세기 스페인은 멕시코를 정복하며 원주민 문명을 파괴하고 자원을 수탈했습니다. 은광에서 채굴된 부는 모두 스페인으로 흘러갔고, 원주민은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권력은 소수 정복자에게 집중되었고, 제도는 다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 유산은 독립 이후에도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독립 이후에도 권력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착취적 제도는 새로운 지배층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반면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착민들은 스스로 노동하고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토지를 분배하고 자치를 도입하면서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이후 미국 사회의 기초가 되었고, 평등한 기회와 보상이라는 가치로 이어졌습니다. 영국 본토에서도 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왕의 절대 권력을 제한한 명예혁명, 독점권을 규제한 법률, 그리고 특허 제도의 도입은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부를 창출할 수 있었고, 이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맨체스터와 같은 도시는 교육과 기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혁신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미국 역시 이러한 제도를 계승해 특허와 경쟁을 통해 빠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멕시코는 독점과 정경유착이 반복되었습니다. 통신 산업을 독과점한 재벌은 국가 경제를 왜곡했고, 비싼 요금과 낮은 서비스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쟁을 막는 제도는 혁신을 가로막았습니다. 이처럼 제도의 힘은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시작되어 현대까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구조, 제도를 넘어선 질문들
제도가 국가의 부와 빈곤을 결정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큽니다. 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첫째, 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도 왜 여전히 불평등이 발생하는가입니다. 미국은 분명 비교적 공정한 제도를 가진 나라로 평가받지만, 내부적으로는 인종, 계층, 지역에 따른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법과 제도가 있어도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도만으로는 불평등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제도를 바꾸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입니다. 착취적 제도가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기득권층이 제도 개혁을 막습니다. 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도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혁명, 외부 압력, 시민운동 등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 정치나 세계 경제 체제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합니다.
셋째, 제도 중심의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국가의 빈곤과 번영은 제도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치, 국제 무역 구조, 외부 개입, 글로벌 자본의 흐름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경제 구조는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측면이 크며, 이는 단순히 내부 제도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 없습니다. 제도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맥락과 외부 조건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넷째, 제도 개혁이 실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가 제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제도를 이식하거나 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사회에 뿌리내리고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 문화, 교육, 시민의식 등 다양한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제도 중심 분석의 한계를 보완하고, 더 입체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국경으로 갈라진 노갈레스는 제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제도를 넘어선 질문들, 즉 누가 제도를 바꾸고, 어떻게 불평등을 극복하며, 국제적 맥락 속에서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제도는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jQg6achJl1o?si=L0sxvbM4hzRHeW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