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감각의 진화 (전기신호, 청각구조, 시각처리)

by oboemoon 2026. 2. 27.

솔직히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살던 제게, 메기가 어둠 속에서 수염과 측선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이야기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정보를 시각에만 의존하고 있었거든요. 이 다큐를 보고 나서야 감각이라는 게 단순한 신체 기능이 아니라, 수억 년 생명의 역사가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번개에서 시작해 집신벌레의 미세한 전기 신호로, 다시 메기의 화학 수용기를 거쳐 인간의 망원경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생존을 위한 적응이 어떻게 지능과 문명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대한 서사였습니다.

전기신호, 모든 감각의 출발점

미국 중부의 거대한 뇌우 장면에서 다큐는 시작됩니다. 먹구름 아래 음전하가 모이고, 구름과 지면 사이 막대한 전위 차가 형성되다가 마침내 번개가 내리칩니다. 대기는 태양보다 뜨거워지고 하늘은 수백 킬로미터까지 밝아지죠. 이 전기의 힘이 생명체 감각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는 설정은 시각적으로 강렬했습니다.

가까운 민물 웅덩이 속 집신벌레를 보면, 세포막 안팎의 이온을 조절해 작은 전위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극이 닿으면 전위가 급격히 변하며 전기적 파동이 일어나고, 그 신호에 따라 섬모의 움직임이 바뀌며 몸은 위험에서 물러납니다. 이렇게 전기 신호로 환경을 감지하는 원리는 지구상 모든 동물 감각의 기초가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이 다큐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번개라는 거시적 현상과 세포막의 미시적 전기 변화를 연결시키는 구성은 상징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얼마나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물론 시각적 임팩트를 위한 연출이었겠지만, 중간 과정이 압축되면서 약간의 비약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전기 신호라는 공통 원리로 모든 감각을 관통한다는 관점은 신선했습니다.

빅블랙 강의 탁한 물속에서 메기는 수염으로 강바닥을 쓸며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측선으로 물의 압력 변화를 감지합니다. 피부 전체에 퍼진 화학 수용기는 강물 속의 맛과 냄새까지 읽어냅니다. 어둠과 흙탕물 속에서도 정확히 환경을 파악하는 이 능력 덕분에 메기는 수중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죠.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제가 환경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시각 정보가 차단되면 거의 무력해지는데, 메기는 애초에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감각 체계를 완성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청각구조, 아가미에서 귀뼈로

모하비 사막의 전갈은 모래를 타고 전해지는 극히 작은 진동을 다리로 감지해 먹잇감을 찾아냅니다. 인간의 청각 역시 진동을 읽는 감각입니다. 공기 분자의 움직임이 고막을 울리면 추골, 침골, 등골이 지렛대처럼 작동해 진동을 증폭하고 액체로 찬 속귀에 전달합니다. 이 정교한 구조는 고대 무악류의 아가미궁에서 시작되어 턱과 귀뼈로 변형되며 진화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감정이 사실은 수억 년 진화의 산물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듣던 소리가 공기 분자의 미세한 진동부터 시작해 고막, 작은 뼈 세 개, 달팽이관을 거쳐 전기 신호로 변환되고 뇌로 전달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는 걸 알고 나니, 그냥 "좋다"라고만 느꼈던 음악이 훨씬 더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고 아가미가 다른 기능으로 바뀌면서 오늘날 포유류의 청각 기관이 완성되었다는 진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학계의 다양한 가설과 논쟁이 존재하는데, 다큐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만 정리해 제시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만큼 과학의 '열린 과정'보다는 이미 완성된 이야기처럼 보였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실제로 귀뼈의 진화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화석 증거를 놓고 해석이 갈리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아가미라는 호흡 기관이 청각 기관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진화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생명은 기존의 구조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왔다는 걸 이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는 드뭅니다.

시각처리, 로돕신에서 문어의 뇌까지

감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시각입니다. 동물 대부분은 눈을 지녔죠. 바다의 가재는 한 눈으로 세 방향의 상을 만들어 거리를 계산하고, 복잡한 색 신호를 구분합니다. 하지만 모든 눈의 근원에는 로돕신이라는 분자가 있습니다. 녹조 볼복스의 세포에서 인간의 망막에 이르기까지 빛을 흡수해 형태를 바꾸고, 그 화학 변화가 전기 신호로 전환됩니다.

초기의 광수용 세포는 얕은 컵 모양에서 시작해 점차 깊어지며 방향을 구별했고, 바늘구멍 눈을 거쳐 수정체를 지닌 눈으로 발전했습니다. 두꺼비는 움직임에만 반응하도록 시각 정보를 단순화해 뇌의 부담을 줄입니다. 반면 문어는 카메라와 같은 눈과 큰 뇌를 활용해 복잡한 영상을 처리하고, 색과 질감을 바꾸어 주변 환경에 맞춰 위장합니다. 감각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이를 처리할 뇌도 함께 확장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 부분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인간의 시각이 얼마나 편향적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색상과 형태 정보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다른 동물들은 편광, 자외선, 적외선 같은 인간이 볼 수 없는 영역까지 활용합니다. 제가 보는 세상은 실제 세계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제 감각 기관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묘하게 겸손해지는 지점이었습니다.

마침내 인간은 감각을 도구로 연장합니다. 로스앤젤레스를 내려다보는 윌슨산 천문대에서 허블은 안드로메다 은하를 관측해 우리 은하 밖에도 수많은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감각에서 시작된 전기적 신호는 신경과 뇌를 거쳐 지능으로 이어졌고, 그 지능은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경계를 넓혔습니다. 감각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적응을 넘어, 인간이 공간과 시간의 기원을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다큐는 감각을 단순한 신체 기능이 아니라, 생명의 역사와 연결된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감동적인 연출과 서사적 완결성에 비해, 과학적 논의의 다양성과 비판적 시각이 조금 더 보완되었다면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번개에서 시작해 우주 탐사로 끝나는 이 여정은, 제가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감각이라는 경험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vnc9H3iW0g4?si=FeQHwKufTngHA-in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